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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국회의원 선거 천안·아산 후보를 만나다] 자유선진당 아산 후보 이명수

중앙일보 2012.03.30 04:28 4면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12일 앞으로 다가왔다. 천안·아산 지역은 충청권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지역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다. ‘천안·아산&’은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후보의 공약과 철학, 걸어 온 길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현대차 2공장·첨단복합 R&D단지 유치에 최선 다할 것”

장찬우·최진섭·강태우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이명수 후보는 “어느 정당이 충청지역을 위해 일하고 누가 아산을 위해 힘을 쓸 사람인지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아산 후보는 지난 4년 동안 평소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KTX를 타고 여의도로 출근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요즘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거의 지역일정만 잡고, 하루 평균 20~30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지역민들을 만나고 있다. 식사할 틈도 없이 빡빡한 일정이지만 이동시간에 잠시나마 책을 읽으며 마음의 피로도 덜고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도전하는 이유는.



 “공약이행률 1위(충남)를 할 만큼 약속한 바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기적인 정책공약 실현과 정치쇄신, 아산발전을 위해서는 힘있고 일 잘하는 재선의원이 절실하다. 18대에 구상하고 실천해 온 장기플랜을 완성해 더 큰 정치, 더 큰 아산, 더 큰 충청권을 만드는데 봉사하고 헌신하고자 출마했다.”



-당선 후 중점 추진사항은.



 “18대 의정활동과 연결해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다. 먼저 국가예산으로 온양행궁을 복원해 우리나라 대표 온천도시로서의 면모를 되찾고 싶다. 그리고 지정 해제된 아산신도시 문제, 지연되고 있는 온양중심 상권 개발추진 문제, 백지화된 황해경제자유구역 인주지구도 재 추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현대자동차 제2공장 유치 및 신도시 내 ‘21C 첨단복합R&D단지’ 유치 추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민족주체성을 지키는 일, 즉 과거 일제 민간인 징용 배상문제, 간도협약 무효화 결의안 처리문제, 녹둔도 문제, 독도 문제, 이어도 문제 등은 물론, 국회선진화, 행정선진화를 추진 하고자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경쟁력은.



 “지난 25년간의 공직생활을 통해 습득한 행정능력도 경쟁력이지만, 그와 더불어 직접 경험했거나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며 얻은 많은 조언들이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처우나 일제 피해자들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의정활동의 큰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후보에게 아산은 어떤 의미인가.



 “아산에는 우리 국민들이 본받아야 할 위인들과 훌륭한 정신이 있다. 이충무공과 청백리의 표상 맹사성, 장영실 선생과, 토정 이지함 선생, 윤보선 전 대통령 등이 남긴 아산의 정신과 문화 속에서 늘 아산사람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를 가져왔다. 또한 아산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중심도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시화로 아산의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의 전통이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하고 있다. 따라서 아산이 산업과 경제의 중심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신과 문화의 고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지역정당의 한계를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경우에도 지역적 뿌리를 가지고 출범한 정당이다. 그런데 자유선진당만을 유독 지역정당이라 폄하하며 한계를 지닌 정당이라고 국민과 지역주민들에게 왜곡시키는 것 자체가 자유선진당의 존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두 정당만 교섭단체로 되어있다 보니 어느 한쪽이라도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는 파행되었고, 결국 18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다. 이번 19대야말로 자유선진당이 제3의 정당이 교섭단체로 진입해 선진 국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



-남은 선거 기간 유권자들에게 어떤 점을 부각시킬 예정인가.



 “아산은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그러한 시점에서 재선의원의 힘을 보여 줘야 한다. 특히 충청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선진당의 재선의원이야 말로 충청도와 아산을 위해 일 할 수 있다. 영남세력과 호남세력이 주축이 된 정당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고, 국민들에게 정치불신만 가중시켰다. 이제는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그 중심에 이명수가 있을 것이다.”



온양중학교 시절 이명수 후보.
나의 인생이야기



대학시절 유신정권 부조리 고민

‘공 직서 바꾸자’ 재학중 행시 합격

아산군 근무 이래 행정 두루 거쳐




아산시 신창면에서 태어났다. 4남 5녀 중 세 번째이며, 이 중 아래 여섯 명이 새어머니의 소생이다. 어린 나이인 5세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고,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끝에서 자랐다. 가정적으로 평탄한 환경도 아니고 이복형제였지만, 다툼이나 반목은 없었다.



 신창초 상급생 시절 장래 희망을 ‘정치인’이라 썼는데, 아마도 어린이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어린 마음에 우쭐해서 그랬던 것 같다. 1970년대에 대전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어려워진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망설였다. 그마음을 가다듬고 성균관대에 입학, 줄곧 장학생으로 법정과를 수석 졸업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학창시절 유신정권의 부조리함에 대해 친구들과 고민을 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공직에 진출해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고시에 도전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어르신들은 항상 “가장 가치 있는 길을 올바르게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공직생활 25년을 거치고, 18대 국회의원 임기 4년간 단 한번도 잊은 적 없다.



 1979년 행정 사무관에 임용돼 고향인 아산군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했고 93년 금산군수, 94년 대통령비서실, 98년 정책기획정보실장, 99년 국무조정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부단장 등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았다.



 특히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시절에는 비서실과 집무실 사이의 벽을 허물어 권위의 문턱을 없애고 한 발짝이라도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8대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결과 아산시 사상 최대 국비예산을 확보했고, 354건의 입법발의를 했다. 또한 18대 국회 4년 연속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의원과 NGO 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을 수상했다. 주간경향이 선정한 18대 국회 최우수의원, 법률소비자연맹이 평가한 충남에서 공약이행률이 가장 높은 국회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이기에 앞서 한 가정의 가장이다. 결혼 이후 줄곧 직장 일에만 쫓겨 지내다 보니 남편과 아빠로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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