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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3월 수상작

중앙일보 2012.03.30 00:26 종합 2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장원



막차를 타다 - 김태형








“이 열차는 신도림행 마지막 열차입니다.”



적막의 동맥 끊는 날카로운 안내 메시지



플랫폼 짚은 발등 위



갈 곳 잃은 바람이 인다





운세 같은 시 한 편 떠받치는 스크린도어



지퍼를 벌리는 문 하루를 닫는 사람들



어디로 가는 길일까



긴 한숨의 꼬리가 길다





가끔은 헤아려본다 막차에 올랐다는 것



내일의 정거장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거룩한 부담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는 곳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신도림입니다.”



이파리 같은 차창들 승객 떠난 옹이진 자리



연둣빛 철길 사이로



내일의 숲 눈부시다.



◆김태형=1986년 서울 출생. 서강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제20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 대학일반부 장원, 제5회 전국지용백일장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등.





차상



벌집 - 안준혁








불투명창 사이사이 씨앗처럼 영근 햇살



햇빛마저 발목 잡힌 회현동 쪽방촌에



온종일 구걸한 꿀을 고스란히 털어 놓는다





틈과 틈을 맞대놓은 방



알을 까듯 움츠리며



날개를 반만 편 채 앓아누운 일벌들



제 속에 꿀보다 진한 삶의 독을 품고 산다



차하



봄동 - 강영미








칠순의 발자국이



텃밭으로 들어갔다





철없는 눈발이 또



그 뒤따라 들어갔다





샛노란



손등 위에서



배추꽃이 피었다



제 자리 묻고 또 물으며



한발 한발 딛는 아침





겹겹이 눈 헤치고



봄동 한 포기 뽑아 드시는,





입춘녘



둥근 밥상에



숟가락이 푸르다





이 달의 심사평



어두운 막차 → 연두빛 숲으로

재기 넘친 젊은 피 느껴져




3월 장원으로 김태형씨의 ‘막차를 타다’를 올린다. 젊은 피가 느껴진다. ‘지퍼를 벌리는 문에 하루를 닫는 사람들’로 이미지화한 막차 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거기다가 간신히 탄 막차에서 ‘긴 한숨’만 내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끝자락은 ‘내일의 정거장’이 가까워진다는 메시지 전달이 어두운 막차를 ‘연둣빛’ ‘숲’으로 환치시키는 재기와 함께 신선하게 읽혔다.



 차상은 남대문시장 부근의 회현동 쪽방촌을 벌집에, 거기 사는 사람들을 일벌에 비유한 안준혁씨의 ‘벌집’이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그 쪽방에는 남대문 시장과 충무로 일대에서 품을 파는 일꾼들과 중국 등지의 상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다. 화자는 그 아픈 현장을 묘사와 진술을 적절히 버무려냈다.



 차하는 강영미 의 ‘봄동’이다.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듯 맑다. 이미지를 구사하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오랜 습작 시간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율격도 경쾌하게 몸에 착착 감긴다. 작품이 소품이었다는 것과 응모작이 단 한 편뿐이라는 것 때문에 차하로 밀렸다. 한 작품만으로 시인의 저력을 읽기는 역부족이었다. 김갑주씨의 작품도 끝까지 들고 있었다.



심사위원=오승철·강현덕(대표집필:강현덕)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드립니다.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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