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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양극화

중앙일보 2012.03.30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역사서에서 경제 분야를 기록한 부분이 식화지(食貨志)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서 비롯되었다. 『한서』 ‘식화지’는 홍범(洪範) 팔정(八政)을 설명하면서 첫 번째는 식(食)이고 두 번째는 재화(貨)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고대에도 경제 문제를 중시했다는 뜻이다.

 『한서』의 이런 서술 체제를 본떠 ‘식화지’를 둔 역사서가 『고려사(高麗史)』다. 세종~문종 연간에 편찬된 『고려사』 ‘식화지’에는 고려 말의 토지제도를 비난하는 대목이 많다. “요즈음 들어 간악한 도당들이 남의 토지를 겸병함이 매우 심하다. 그 규모가 한 주(州)보다 크며, 군(郡) 전체를 포함하여 산천(山川)으로 경계를 삼는다”는 대목도 있다. 한 집안 소유 농지가 한 주보다 크다는 것이다. 소수가 거대한 토지를 과점(寡占)하면 대다수 농민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고려사』 ‘식화지’에는 간관(諫官) 이행(李行) 등이 호강(豪强)한 무리들은 끝도 없는 농지를 차지했지만 “소민(小民)들은 일찍이 송곳 꽂을 땅도 없어서(曾無立錐之地) 부모와 처자가 다 굶주리고 서로 헤어졌으니 신 등이 심히 애통합니다”라고 상소한 내용도 있다. 『고려사』 ‘신돈(辛旽)열전’은 “(노비로 전락한) 백성들이 병들고 나라가 여위게 되었으며, 그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수해와 가뭄이 끊이지 않고 질병도 그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려 전체의 재화(財貨) 생산량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소수 권세가가 재화를 과점(寡占)하면서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나라가 망할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판도판서(版圖判書) 황순상(黃順常) 등이 상소를 올려 “식량을 족하게 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는(足食安民之道) 토지제도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우왕(禑王)이 재위 14년(1388) “근래 호강한 무리들이 남의 땅을 겸병해 토지제도(田法)가 크게 무너졌다”면서 그 폐단을 구하는 법을 반포한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왕조가 붕괴될 위기임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끝내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해 요즘 말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정도전(鄭道傳)과 조준(趙浚) 같은 역성혁명파 지식인들은 토지 문제 해결을 신왕조 개창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고려는 개국 474년 만에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 동양학에서 양극(兩極)은 남극과 북극을 뜻하는데 둘은 지구 맞은편에 따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나라 안의 양극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선거전이 한창인데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앞으로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진정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세력들이 미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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