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행복한 성공을 바란다면

중앙일보 2012.03.30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길 바란다. 동시에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그러나 최근 학교폭력, 성적비관 등으로 인한 자살 사태를 보면서 부모나 교사, 나아가 우리 사회가 후세들에게 행복보다는 성공을 너무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행복 없는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에서 대개 최상위권(세계 5위 이내)의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1.7배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얻은 결과임을 유념해야 한다. 공부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투입한다는 것은 대신 다른 것들은 하지 못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 때문에 희생하고 있는 것들을 외국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정직, 신뢰, 약속, 배려, 봉사, 나눔, 소통, 협동 등을 실천함으로써 체득할 수 있는 ‘사회적인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 국가 중 20위 수준이다. 좋아하는 마음, 공감, 연민, 지적 호기심, 헌신, 탐구, 개척정신, 자신감 등 감성의 발달을 필요로 하는 ‘정서적인 능력’은 세계 40위에서 50위 수준이다. 여기서 사회적·정서적 능력이란 자신과 다른 학생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형성,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더불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할 줄 알며,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가리킨다.



 만약 학교폭력의 원인이 학생들의 사회·정서적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면, 학생들의 좋은 학업성적이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의 발달을 혹독하게 희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성공의 지름길로 생각하고 있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 학생들로 하여금 오로지 성적에 매달리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이런 교육을 그대로 계속해도 괜찮은가? ‘공부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거나 ‘성공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신념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 결과와 변화 동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30여만 명의 학생이 참여한 200여 개의 연구를 기초로 ‘사회·정서교육을 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간에 학업성취도를 분석하여 비교했다. 그 결과 사회·정서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정서교육을 받은 학생은 더 높은 학습동기와 더 나은 수업태도를 가지고 학교생활에 전념함으로써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들은 또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친(親)사회적인 행동을 보여 주며, 부정적· 파괴적인 행동을 적게 보여 주었다.



 사회·정서교육이 훌륭한 인성을 길러줌은 물론 성적도 향상시켜준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그래서 미국 의회는 지난해 이러한 많은 연구결과를 반영해 ‘지적인 학습과 사회·정서적인 학습을 균형 있게 하도록 촉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학생들의 사회·정서적인 능력을 키워 주는 인성교육을 더욱 충실히 실천해야 한다. 그동안 공부 때문에 소홀히 생각했던 인성교육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새롭게 인식할 때가 되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이 먼저 행복해지면 공부도 더 잘하고,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 사회 모두가 가져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사회·정서적인 능력을 먼저 키워 주지 않으면 자녀가 행복해지지 않을뿐더러 결과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부모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뀌고, 아이들이 행복해진다.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