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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

중앙일보 2012.03.30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성장의 과실을 분배받는 데서 소외된 농어민과 도시 서민의 문제를 방치하는 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들을 위해 성장과 흑자의 여력을 과감히 투자해야 합니다.”



 “경제부처들 사이에서도 형평과 복지가 빠지면 이야기가 안 되었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여야가 모두 인기영합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요즘 얘기 같겠지만 아니다. 모두 20여 년 전 노태우 정부 때의 어록이다. 첫째 인용문은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6·29 선언 1주년을 맞아 ‘경제민주화 선언’을 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이자 4·11 총선 공약에도 많이 등장하는 ‘경제민주화’가 그때도 키워드였다. 둘째는 당시 경제기획원 실무자 얘기고, 셋째는 6공의 두 번째 경제팀장을 지낸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회고다. 6공 경제를 다룬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이장규 외 지음, 올림)를 다시 읽으면서 ‘현재 같은 과거’ ‘과거 같은 현재’와 숱하게 대면했다.



 농어촌 부채 탕감은 ‘포퓰리즘의 향연’이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은 참패했고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여당과의 당정협의가 무의미해지면서 경제부처도 난감해했다. 농어촌부채경감특별조치법도 여소야대 국회의 산물이었다. 경제관료는 이미 수차례 나왔던 부채 경감 대책이 별 효과가 없었으니 농외소득 증대 등 구조개선에 돈을 쓰자고 주장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과 청와대 비경제팀도 ‘퍼주기’에 동조했다. 농어촌 부채 경감은 대선 공약이었다.



 소수의 부자들이 나라 땅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을 등에 업고 토지공개념이 도입됐다. 문희갑 경제수석은 “개혁을 놓치면 혁명이 온다”고 했다. 막상 도입하니 부작용이 속출했다. 토지초과이득세를 피하기 위해 강남 테헤란로 주변의 나대지엔 여관촌이 들어섰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토지공개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저자는 6공 경제정책에 대해 ‘경제민주화를 통한 형평과 균배(均配)’라는 막연한 캐치프레이즈만 강조했을 뿐 과연 어떻게 실질적으로 감당할 것인지 구체적인 복안은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원 조달 부분을 두루뭉수리로 표현한 요즘 여야의 공약 경쟁도 여기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2012년의 한국은 슬픈 반복일까, 웃기는 반복일까.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이런 얘기를 자주 했다.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 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들어서는 안 되지만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봐야 한다. 그 비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나라의 성패도 거기에 달려 있다. 결국 이런 결정을 잘하는 것이 한 나라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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