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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북한산 들개들이 밉지만은 않은 것은 야성이 살짝 엿보이기 때문

중앙일보 2012.03.30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만년 초단인 주제에 기회 날 때마다 검도 예찬론을 늘어놓는 것은 검도가 지닌 독특한 매력 때문이다. 건강에 좋다는 뻔한 얘기가 아니다. 야성(野性)을 자극하는 매력이다. 현대 검도는 고대·중세 진짜 칼싸움의 원형은 살리되 위험한 요인들을 제거해 스포츠화한 것이다. 죽도(竹刀) 자체가 살상을 피하고자 고안된 도구다. 맨발로 마룻바닥을 탕탕 구르며 전진하고, 머리·손목·허리를 치고 베는 동작은 아득한 원시(原始)의 생존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더 큰 매력은 동작마다 큰 소리로 넣는 기합이다. 생각해보라. 우리 일상에서 언제 목청 터져라 소리쳐 볼 기회라도 있는가.



 북한산 일대에 들개 수십 마리가 돌아다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본격적인 포획 작업에 들어갔다. 사자와 달리 임팔라·가젤 같은 먹이를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뜯어먹는 아프리카의 리카온, 드물게 사람도 해친다는 호주의 딩고 같은 진짜 들개는 아니고 대부분 유기견이다. 자기들끼리 산속에서 사랑을 나눠 새끼들도 태어났다니 그대로 두면 언젠가 먼 조상 세대의 야성을 되찾을지 모른다. 한밤중에 북한산 백운대나 향로봉·만경봉 꼭대기에서 보름달을 배경으로 길게 울부짖는 들개의 실루엣. 서울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산은 너무 좁고 도심에 가깝다. 넓이가 고작 79.9㎢.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8980㎢)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1990년대 캐나다에서 들여온 늑대를 방사·번식시켜 생태계 복원에 성공한 옐로스톤 공원을 본뜨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등산객이나 위협하는 애물단지로 민원이 빗발치니 공원관리공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들개들도 나름대로 생존 비결이 있어서, 공단 직원의 제복은 한눈에 알아보고 달아나지만 만만한 여성 등산객이 나타나면 따라붙어 치근거린다고 한다. 들개뿐일까. 정광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개 외에 들고양이도 다람쥐 같은 설치류를 해쳐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고 말한다. 들고양이는 야행성이라 포획하기도 까다롭다.



 북한산뿐이 아니다. 29개 유인도, 69개 무인도를 품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몇몇 섬들은 염소 떼가 골치다. 양기식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관리부장은 “야생화한 염소는 새싹·풀에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어 섬 전체를 황폐화시킨다”고 말한다. 포획 팀이 염소 떼를 몰면 결국 바다로 뛰어드는데, 이때 배에서 큰 뜰채로 건져낸다고 한다. 게다가 속리산에서는 방생(放生)된 후 번식한 대만꽃사슴 열댓 마리가 말썽이다.



 그래도 나는 잃어버린 야성을 어정쩡하게나마 되찾은 들개·들고양이의 말썽이 왠지 밉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인류도 아프리카 숲 속에서 벌거벗고 지내다 여기까지 왔다. “당신들도 가끔 근본을 생각하라”고 북한산 들개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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