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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국제 유가, 손가락 말고 달을 보라

중앙일보 2012.03.30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만 15% 넘게 올랐다. ‘이란 리스크’가 최근 유가 상승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80%에 이르는 한국에는 그 부담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조짐에 이어 유가 상승세까지 가세하고 있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 여건이 만만치 않다.



 그럼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만 완화된다면 1990년대와 같은 장기 저유가 시대로 복귀할 수 있을까. 국제유가의 장기 사이클을 보자. 지난 40년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2달러에서 120달러까지 60배로 뛰었다. 물가 상승분을 제외하더라도 10배가 넘는다. 지난 수십 년간 뚜렷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90년대 초반 걸프전부터 지난해 12월 미국의 이라크전 종전 선언에 이르기까지 중동을 둘러싼 수많은 지정학적 변수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중국 등 신흥국의 원유 수요 증가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다양한 변수도 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단기적 등락 요인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장기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장기적 유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원유가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는 이른바 ‘피크오일’의 시기가 2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영국 석유회사 BP도 원유의 채굴 가능 기간이 40여 년밖에 남지 않았고, 오일샌드 등 비전통 원유를 감안하더라도 50년 정도가 고작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심해유전 등을 포함하더라도 이 기간이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란 리스크와 같은 지정학적 위험은 물론 신흥국 수요, 생산설비 부족, 투기수요의 가세 등은 원유 값을 설명하는 데 있어 부차적 요인에 불과하다. 사용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이 제한돼 있다는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나 신흥국·투기 수요만 거론하는 것은,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과 같다. 매장량과 채굴 기간 제한을 고려할 때 유가의 장기적 상승 추세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원유 고갈이 아직까지는 먼 훗날의 일이라고 해도 기존 유전의 매장량 감소로 생산비용이 늘고 있어 옛날처럼 싼값에 ‘이지 오일(Easy Oil)’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프랑스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에 따르면 68년 이후 나타난 다섯 차례의 유가 급등은 모두 미국 경기의 하강을 가져왔다. 유가 상승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번에도 예외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론 유가 급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회복 지연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비하고, 장기적으론 원유 고갈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신흥국까지 신재생에너지의 개발·활용에 돈과 기술력을 쏟아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현재 한국의 에너지 공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로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현재의 유가 상승세가 부담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한 해 전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파장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4%에서 34%로 감소했다. 이를 대체한 것이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다. 특히 원자력은 81년 2%대였던 비중이 2010년 5% 수준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파장으로 일본·독일 등 일부 선진국의 원자력 활용 비중이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이른 시간 안에 그 자리를 대체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직 본격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다. 그간 축소돼 오던 원유 등 화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미 IEA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 세계의 원자력에너지 사용 비중이 줄어들 경우 추가적인 유가 상승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체에너지 사용이 늘어 옥수수 등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경우 유가 상승의 여파가 다른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우리가 원시농경 사회로 돌아가거나 국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지 않는 한 유가 상승과 원유 공급 감소에 대비하는 ‘쉬운 길’은 없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결정 등으로 기름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한 모양새이지만 이런 단기적 유가 흐름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장기적인 유가 상승이 우리 경제에 주어진 ‘상수’임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비책을 세워나가야 할 때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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