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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얼굴 화상도 견뎠건만 4억 빚 … 한강 가려했던 이원배씨 7년 만에 신용카드 받았다

중앙일보 2012.03.30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2005년 부도를 냈던 주방가전 업체 ‘더오디’의 이원배 대표. 신용이 회복돼 지난 28일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는 “이 카드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희망 메시지”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한 중소기업 대표 김진일(59)씨는 모친 명의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개통이 불가능해서다. 17년 전인 1995년 부도를 낸 후유증이다. 당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던 김 대표는 정밀기계를 개발했다가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회사가 무너졌다. 공장과 집을 처분했는데도 빚이 수억원 남았고, 본인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10여 년을 노력한 끝에 2008년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면책’ 결정을 받았다. 불가항력으로 부도가 난 것이며, 빚을 갚을 처지가 되지 않으니 채무를 전부 탕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는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실패 경험자들 중에서 심사해 주는 ‘재창업 지원 자금’ 1억원을 받아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나는 다시 일어서고 싶다 <상> 형기 없는 감옥, 사업 실패

 재기의 길을 밟아가고 있지만 휴대전화는 개통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파산면책을 받은 뒤에도 5년간은 신용조회를 하면 파산자였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이건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데 결격 사유가 된다. 나뿐 아니라 아이들도 자기 이름의 휴대전화를 갖지 못했다. 부모가 보증을 서야 하는데 내가 무자격자라….”



 그는 그렇게 부도 후 17년이 지난 지금도 굴레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



 김씨는 또 다른 경험을 전했다. “부도 후 공장과 집이 경매 처분됐다. 돈은 채권자들이 모두 가져가고 나는 한 푼도 쥐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훗날 이 공장과 집에 대해 양도소득세와 주민세 1억1000만원을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정말 말문이 막혔다. 그건 한동안 또 다른 부채로 남았다.”



 김 대표는 “경매 처분에 대해 양도세·주민세만 면제해줘도 뜻하지 않게 문을 닫게 된 기업인들이 다시 일어서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인들에게 한 번의 실패란 헤어나기 힘든 수렁을 뜻한다. 공장과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남은 빚은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돈을 벌어야 갚아나갈 텐데, 재창업 기회는커녕 취직조차 힘들다. 중앙일보가 중진공과 함께 실패 경험자 3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86%가 ‘아직 빚을 다 갚지 못했다’고 했다. 전체의 81%가 사업 실패 후 3년 이상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랬다. 갚아야 할 빚이 ‘1억~3억원’이란 응답이 27%에 달했고, 3억~5억원도 1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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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조사 대상은 중진공의 ‘재창업 지원 자금’을 받아 재기의 길을 걷는 사업가들이었다. 이들은 사업 실패 후 가장 어려웠던 점(복수 응답)으로 ‘신용회복’(32%)을 꼽았다. 신용불량자 신세에서 벗어나야 은행에서 돈을 빌려 다시 사업을 할 텐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괴로움으로는 ‘가족 생활비 마련’(28%)과 ‘빚 독촉’(27%)을 들었다. 한 설문 응답자는 “패배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때 대인기피증을 앓았다”고 털어놨다. 대부분(69%)은 어떻게든 스스로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했지만 친구·친지 같은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상당수(31%)였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이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전체 자살자의 4%가량이 사업 실패 때문에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근거한 분석이다. 국내 한 해 자살자가 1만5000명 정도이니, 매년 600명가량이 사업 실패 때문에 목숨을 끊는 셈이다. 설문에서는 13%가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을 실패 후 가장 많이 했다’고 답했다. 2004년 폐업하고 빚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려 이혼까지 한 L씨(59) 역시 “내가 세상을 뜨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족이 보고 싶지만 혹시 내가 근처를 배회한다는 얘기가 들리면 채권 추심자들이 또 가족을 괴롭힐까 봐 가지 못한다”고 했다.



 수렁에서 헤어나는 데 성공한 이도 있다. 소형 주방가전 회사 ‘더오디’의 이원배(46) 대표는 지난 28일 등기우편으로 회사에 배달된 신용카드를 받아들었다. 2005년 부도를 낸 뒤 7년 만에 쥐어보는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다.



 애초 그는 휴대전화 부품 개발업체를 운영했다. 엔지니어(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 출신인 이 대표는 ‘소기업은 기술력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연구개발(R&D)에 몰두했다. R&D에 빠져 자외선을 너무 많이 쬐는 바람에 얼굴에 화상 흉터가 남을 정도였다. 대표부터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는 무너졌다. 애써 개발한 제품을 대기업이 받아주지 않아서였다. 어찌어찌 갚았는데도 빚이 4억여원 남았고, 자신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듬해 친척과 친구들에게 사정사정해 5000만원을 빌려서는 다시 ‘더오디’를 차렸다. 그러나 신불자 처지라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다. 정책자금 지원 신청을 해봤으나 그에겐 지나치게 좁은 문이었다.



 이 대표는 “억지로 몇 년 버티다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초 한강에 가려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새 기술을 개발했다. 커피 머그잔을 올려놓으면 커피가 식지 않고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잔받침 ‘핫탑’을 만들어냈다. 4억원 채권을 갖고 있던 기술보증기금은 기술력을 인정해 채권의 종류를 ‘악성’에서 ‘정상’으로 바꿔줬다. ‘신용불량자’란 꼬리표를 떼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재창업 정책자금 2억원까지 따냈다. 그 결과 마침내 자신의 신용카드를 받아들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봉투를 뜯고 신용카드를 꺼내는 순간 지난 7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를 교훈 삼아 더 탄탄한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덧붙였다. 



김영민·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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