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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일어서고 싶다, 쓰러진 기업인의 호소

중앙일보 2012.03.30 00:00 경제 1면 지면보기
“실패한 가장, 못난 아비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 직장을 나와 사업을 차린 L씨(59·서울 역촌동). 생산기기 자동화에 투자했다가 돈만 쏟고 실패했다. 거래처마저 끊겨 2004년 결국 사업을 접었다. 공장과 재산을 처분해 빚을 갚았지만 그래도 10억원이 남았다. 수시로 집에 들이닥치는 빚쟁이를 피해 집을 나와 전전했다. 그러나 빚쟁이들은 계속 가족을 괴롭혔다고 했다. 결국 2009년 서류상으로 부인과 이혼했다. “세상에 누가 가족과의 끈을 놓고 싶어 하겠나. 하지만 그걸 놓지 않으면 가족들만 힘드는데….”



 L씨는 지금 방 한 칸을 얻어 전부터 알던 작은 기업들에 재무 쪽 일을 봐주고 “입에 풀칠을 한다”고 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능력이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열심히 해보려던 건데. 앞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는지….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힘들 것 같다.”



 실패한 기업인들의 고단한 현실이다. 빚에 쪼들리는 것은 기본이다. 가족 관계마저 끊어지기 일쑤고, 평생을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재우(72)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 이사장은 “한국에서 실패한 기업인은 사실상 형기 없는 감옥에 갇혀 사는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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