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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보수가 사랑한 직업

중앙일보 2012.03.28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검사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가 정말 소중한 자리라는 걸. 정치판, 이 사판(事判·행정을 맡는 스님)의 세계는 매우 험하고 위험합니다. 그리고 망가지기가 쉽습니다.”



 지난 2일 국회 법사위 회의실. 박준선(새누리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검사 출신의 이 초선 의원은 “정치권에서 젊은 판검사를 영입하는 것을 보니 우려가 된다”며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게 의외의 당부를 했다.



 박 의원의 이날 발언은 야당(민주통합당)까지 법조인 영입에 열을 올리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공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법률신문의 19대 총선 후보자 분석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이 지역구 후보로 공천한 법조인은 18대 58명에서 38명으로 급감했다. 공천 탈락자 중엔 박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주목할 대목이 있다. 검사 출신은 28명에서 23명으로 상대적으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경우 법조인이 36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검사 출신은 5명에 머물렀다.



 새누리당의 검사 선호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점은 이번 총선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또다시 검사 출신(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에게 맡긴 데서도 확인된다. 18대 때는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었다. 보수를 대변한다는 새누리당이 검사 출신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뭘까.



 법조계에선 검사 출신이 다른 직종에 비해 한국 정치 지형에 쉽게 적응한다는 점을 든다. 검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맨손으로 출발해 범죄의 전모를 밝혀내고 법률을 적용한다. 판사가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는다면 그 밥상을 준비하는 건 검사다. 전투력도 강하다. 법정에서 숱한 변호사들과 겨뤄왔다. 특히 정치권의 다툼이 고소·고발로 이어지면서 법률 전문가가 필요했고 그 역할은 주로 검사 출신에게 맡겨졌다.



 ‘유능한 검사’의 중용은 역으로 보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보수 진영에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많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향식인 한국 보수 정당에서 풀뿌리부터 성장한 ‘현장형 보수’는 찾기 힘들었다. 민주화와 함께 군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이 줄면서 빈 자리를 채운 건 법조인과 직업 관료였다.



 이러한 충원 시스템은 얼마 전까지 유효했다. 아니, 성공적이었다. 기반이 허약한 보수의 버팀목이 돼왔다. 2007년 정권교체를 이끈 주요 동력 중 하나였다. 현 정부 들어 여당 대표를 맡았던 5명 중 4명(강재섭·박희태·안상수·홍준표)이 검사 출신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국의 보수가 지금은 무기력하다는 지적을 받게 된 것일까. 그 까닭은 유능함의 의미가 달라진 데 있다. 과거의 유능함은 정치 지도자의 뜻을 기능적으로 뒷받침하고 상대 정당과 맷집 있게 싸우는 것을 뜻했다. 이제 유능함은 사회 저변의 흐름을 읽고 공감하는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보수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돌출한 게 아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의 부동산 값이 흔들리면서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노후가 보장된다”는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이 지지층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지만 보수는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에 열려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패배였다.



 정당이 특정 직업군을 선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진정으로 ‘열린 보수’가 되고자 한다면 인적 자원 확보의 경로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부 개혁의 리모델링을 통해 건실한 정치 신인을 양성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사 출신 후보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2주 후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박 의원의 고언 속에 등장한 ‘사판의 세계’를 ‘이판(理判·수행에 정진하는 스님)의 세계’로 바꿔가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법률가로서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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