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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처럼 업고 다닌 집 … 서도호, 서울에 내려놓다

중앙일보 2012.03.26 00:05 종합 33면 지면보기
‘서울집/ 서울집(Seoul Home/Seoul Home)’, 1457×717×391㎝. 서도호는 유년기를 보낸 서울 성북동의 한옥 사랑채 모양 천 설치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오랜만의 국내 개인전에 성북동 한옥 본채의 실물 크기 비단 설치로 돌아왔다.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서도호
시작은 한옥이었다. 조선시대 순조(1790∼1834)는 민간의 생활을 체험하고자 창덕궁 후원에 양반집을 짓고 연경당(演慶堂)이라 했다. 왕은 그 집에서 양반의 옷을 입고 양반의 음식을 먹었다.

리움서 ‘집’시리즈 모아 생존 한국 미술가로는 첫 개인전



 한국화단의 거목 서세옥(83) 화백은 1970년대 성북동에 이 연경당의 일부를 본 따 사랑채를 지었다. 그 장남 서도호(50)는 그 집에서 자라고,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때부터였다. 그전까지는 공기처럼 당연했던 집도, 말도, 낯선 곳에선 사무쳤다. 서울선 손 뻗으면 잡힐 듯 명확했던 것들이 미국서는 그렇지 못했다.



사는 집 구석구석을 줄자로 재기 시작했다. 연경당 닮은 집 사랑채 모양대로 천을 박음질해 만든 설치가 그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었다. 여름 한복천인 옥색의 반투명한 은조사(銀造紗)로 만든 이 한옥은 다른 문화권에서 그를 연착륙시킨 낙하산이었다.



 서도호가 돌아왔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02-2014-6900)에서, 생존 한국 미술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 작가의 귀환과 함께, 그간 세계 각지에서 드문드문 보여줬던 그의 ‘집’ 시리즈가 한데 모였다.



‘별똥별-1/5’, 762×368.3×332.7㎝. 서울의 한옥이 미국 집에 날아와 부딪치는 형상이다.
 서도호는 해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 중 한 명이다. 서울·런던·뉴욕을 오가며 유목민적 삶을 살고 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나와 타자, 그리고 그 경계를 뛰어넘는 소통을 화두로 삼아 왔다. 리움 우혜수 수석 큐레이터는 “서도호는 백남준과 이우환 그 다음 세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라고 말했다.



 ‘집 속의 집’이라는 제목의 이 대규모 전시에는 40여점의 조각·영상·드로잉이 나왔다. 한옥집 쪽문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투영’, 미국으로 날아온 한옥과 아파트의 충돌을 5분의 1 축소 모델로 표현한 ‘별똥별 1/5’ 등 20년차 노마드(nomad·유목민)인 그가 떠돌았던 집들이 설치물로 되살아났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이 미술관 블랙박스 안에서 관객은 공중에 떠 있는 집 설치들을 올려다보거나, 실물 크기대로 배관과 화장실까지 오밀조밀 만들어 놓은 투명한 집 속을 누비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마치 창호지 문 밖으로 마당을 볼 수 있듯, 안과 밖을 구별 짓지 않은 작품들이다. 해서 이 집들은 서도호라는 개인이 살았던 집이지만 우리의 집이 됐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까’라는 문답의 과정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다.



 전시의 대표작은 ‘서울집’. 성북동 한옥 본채 모양대로 실크로 바느질해 만들었다. 길이 1457㎝로 공중에 떠 있는 대형 천 설치다. 사랑채의 소년이 본채의 어른이 되어 돌아오듯, 이번 전시에 첫선을 보이며 전시장을 압도했다.



 왜 집이고, 천 설치였을까.



작가는 “내게 집은 옷, 나는 달팽이처럼 집을 업고 입고 다녔다”고 운을 뗐다. “옷이나 집이나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내 천 작업은 집을 천으로 만들었다기보다 집에 옷을 입힌 것”이라고 대답했다.



 -왜 천으로 집을 만드나.



 “그것은 공간에 옷을 입히는 행위이며, 달팽이처럼 자기 집을 옮겨 다니려는 시도다. 또한 은조사나 노방(얇은 비단) 등 투명한 천을 이용한 이유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기억을 시각화하기 위해서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이후 10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소감이 각별하겠다.



 “여자였다면 아마 시집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결혼하는데 왜 시집을 간다고 하지’‘왜 집처럼 생긴 가마를 타고 가는 거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집과 공간, 그리고 그 주변을 포함한 광의의 표현일 터다.”



 한옥은 뉴욕의, 베를린의 집으로 확장됐고, 합쳐졌다. 그리고 이제 그는 뉴욕과 서울 간 1만1080㎞ 거리의 중간 지점인 태평양 한가운데에 집을 세우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라 명명한 이 작업엔 건축가와 공학자, 생물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전시는 6월 3일까지 열린다. 다음 달 7일엔 서씨와 우정아 포스텍 교수의 강연이 마련돼 있다.



서씨는 오는 9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에도 신작을 내놓을 계획이다.



덕수궁미술관에선 고종의 침전(寢殿)이었던 함녕전(咸寧殿), 즉 역사적이고도 개인적인 공간을 주제로 삼는다. 광주비엔날레에선 시민들과 협업하는 일종의 사회적 조각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서도호=196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화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회화,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 전공.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도쿄 모리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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