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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숨은 인재 발탁

중앙일보 2012.03.26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세조실록』 재위 7년(1461) 6월조에는 ‘부암의 늙은이, 위빈의 노인(渭濱之老)’이라는 말이 나온다. ‘부암의 늙은이’는 부열(傅說)을 뜻한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백방으로 인재를 구하러 다니다가 부암이란 곳에서 죄수들과 함께 성을 쌓는 노인 부열을 발견하고 재상으로 삼았다. ‘위빈의 늙은이’는 려상(呂尙)을 뜻한다. 원래 강(姜)씨인데 그 선조가 려(呂) 땅에 봉해졌으므로 려상이라고 불렸다. 위수(渭水)가에서 낚시질하다 주(周)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어 스승(師)이 된 강태공(姜太公)이 려상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남의 참외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말고, 오얏(자두)밭에서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는 강태공의 말이 실려 있다. 정조는 재위 1년(1777) 1월 ‘조정의 벼슬아치가 모두 어진 것도 아니고, 초야(草野)의 인물이 모두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라면서 “판축과 조황의 어짐(版築釣璜之賢)은 쉽게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괄지지(括地志)』에 부열을 얻은 곳을 ‘성 쌓은 곳(版築之處)’이라고 기록한 것처럼 성 쌓는 인부 중에도 인재가 있다는 뜻이며, 황계(璜溪·위수)에서 낚시질(釣)하던 노인 중에도 인재가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은(殷)나라 재상이 된 이윤(伊尹)은 원래 요리사였던 인물이다. 『한서(漢書)』 ‘가의(賈誼)열전’은 한(漢)나라 가의가 불과 스무 살 때 문제(文帝)에게 태중대부(太中大夫)로 발탁되어 대대적인 개혁을 주창했고 전한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임란 발생 불과 1년 전인 선조 24년(1591) 서애 류성룡(柳成龍)에게 발탁되어 전라좌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후 임란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인재 발탁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여야 각 정당의 공직 후보자 선정 결과를 보면 유체(幽滯)란 말이 생각난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버려진 인재를 뜻한다. 부열과 강태공처럼 연륜 있는 전문가도, 이윤처럼 빈천한 신분의 인재도, 가의처럼 신진 기예도 찾기 힘들다. 반면에 은문(恩門)은 흘러 넘쳐 보인다. 은문이란 과거 급제자가 자기를 급제시켜준 시관(試官)을 일컫던 말로서 평생 문생(門生)의 예를 다했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은 묻혀 있던 예형(?衡)을 천거하면서 “백 마리 지조가 한 마리 악조만 못하다”고 쓴 ‘예형을 천거하는 표’를 올렸다. 그래서 남을 천거하는 글을 악표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겐 악조는 언감생심이고 최소한 은문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지조만 건져도 다행이다 싶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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