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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핵 안보와 안전, 민족의 생존이 걸려 있다

중앙일보 2012.03.26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오늘 개막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회의 자체보다도 엄청난 역사적 의의를 지닌 회의 주제가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54개국 정상이 서울에서 모인다는 것은 물론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국제회의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이 보름 후로 다가온 총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제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북한 핵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정상회의라면 모를까, 비(非)국가집단에 의한 핵 테러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모임에 한국인들은 특별한 긴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민족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 안보와 안전이란 비상과제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국민적 인식을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핵 안보와 안전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이 우선돼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확한 지식이 뒤따라야 하며, 또한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겠느냐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선택 등 일련의 조건이 구비돼야 한다. 우리에게 핵 안전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일깨워준 작년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파손사태는 핵 안전과 직결된 원자력발전에 관한 정책적 선택이 결코 수월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원자력발전의 필요성과 위험성, 그 상반된 성격으로 인해 국가 정책이나 국민 여론은 혼선과 분열에 휩싸이곤 한다. 방사성 물질을 계속 뿜어내고 오염수는 늘어만 가는 후쿠시마 원전의 수습불가능 사태를 지켜보면서 원자력에 의존한 전력 수급보다는 재생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로 전력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번 고리 원전의 사고도 그런 흐름에 보탬이 될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이 핵기술 차원의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폐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원자력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은 원전의 미래에 대한 신중한 고려를 요구한다. 국가전력의 31%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화력(火力)이나 수력(水力)에 비해 월등한 원자력의 경제성은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그러기에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1기, 건설 중인 7기, 계획 중인 6기에 더해 원전의 UAE 수출로 시작된 해외 진출 전망까지 합치면 ‘원자력 대국’의 꿈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다 원자력 의존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환경정책과 보완성을 지녔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보다 절반으로 낮은 우리 전기요금과 일본보다 훨씬 높은 1인당 전력 소비를 감안할 때 과연 우리 국민이 원전과 연관된 핵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는 전혀 확실하지 않다. 결국 핵 안전을 위한 국가 정책의 선택은 냉철하고 균형 있는 논의와 검토를 필히 거쳐야 하며 그만큼 정치권에 큰 숙제를 부과하게 될 것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핵 안보는 핵 군축, 핵 비확산, 핵 테러예방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과제다. 핵 안보 성취를 위한 가장 모범적 노력의 하나인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는 올해에 핵안보정상회의가 한반도에서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역사상 최초의 원자탄 투하로 발생한 25만 명의 희생자 가운데 2만5000명은 군수공장에 징용되었던 노무자를 포함한 우리 동포들이었다. 이 사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비핵화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을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확실히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지름길이 한반도를 핵무기 없는 비핵지대로 지켜가는 것이라는 민족 구성원 모두의 여망과 남북 지도자의 결단이 만든 산물이었다. 즉 민족 생존의 길을 확인한 역사적인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에 걸친 우여곡절과 시비를 되짚어 볼 필요는 없다. 더 늦기 전에 민족의 안전과 아시아 및 지구촌 평화에 남북이 함께 기여할 최선의 길인 비핵화 공동선언의 활성화를 추진해야 되겠다.



 북한은 올해에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고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의 북측 주역이었던 김 주석의 역사적 업적에 살아 숨쉬는 의미를 불어넣는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남북관계가 평화적 협조의 단계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핵무장 유발의 도미노 현상이나 미·중 간의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을 예방하는 데 공헌할 것이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지만 민족은 온전히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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