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돌고돌아 살아남은 친박연대 4명 … 박근혜 의리공천 아닌가”

중앙일보 2012.03.24 00:35 종합 20면 지면보기
19대 총선 공천을 현장에서 지켜본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류정화·김정하 기자, 남윤호 부장, 강인식·허진·김경진·정효식 기자, 박신홍·신용호·김정욱·강민석 차장, 백일현·손국희 기자. [박종근 기자]

19대 총선 공천 드라마가 끝났다. 약 두 달 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공천 기구를 발족하면서 ‘진한’ 휴먼 드라마를 찍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장르가 바뀌었다. 언뜻언뜻 ‘눈물’로 ‘페이소스’를 주곤 했지만 19대 총선 공천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음모와 꼼수, 배신과 반전(反轉)이 가득한 스릴러, 아군끼리 총기를 난사하는 액션극이었다. 때론 코미디 같기도 했다. 공천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이 23일 오후 한자리에 모여 두 달간의 공천 과정을 정리해봤다.

●후보 등록을 강행할 것이라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 공천 정국의 대미를 어쨌건 이정희 대표가 장식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과거 ‘이정희를 보면 노무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대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시절 늘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주로 평택 미군기지 문제 등 주한미군과 관련한 문제를 많이 담당했다. 변호사가 집회 현장에 꼭 가서 얘기를 듣고 재판에 반영하면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아스팔트 변호사’란 말을 들었다. 시위를 하다 아스팔트에 드러누운 적이 있다. ‘여성 노무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인 것 같다.”

●이 대표는 과거 ‘북한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은 이분법적 사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북주의자인가.

 “이 대표를 취재할 때 ‘당신은 종북주의자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 대표는 ‘제가 종북주의자라고 믿으세요?’라고 되묻더라. 이 대표를 만난 사람들은 편안하고 소통이 잘 돼서 ‘종북’이란 단어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도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민노당을 택했다. 이 대표는 이른바 민노당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에 얹혀 정치를 시작하긴 했지만 야권연대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진보를 대중화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쇼맨십이 강한 정치인이란 얘기도 있는데.

 “서울시청 앞에서 광우병 쇠고기 집회 때나 국회에서 몸싸움할 때 맨 앞에서 가장 격하게 몸싸움을 하다가 가장 먼저 실려 나가는 게 이정희 대표라는 말이 있다. 이 대표가 여경(女警)에게 ‘어딜 만져’라고 소리 지르는 동영상이 반대 진영에서 이 대표를 희화화하는 소재로 많이 쓰인다.”

●파국으로 치닫던 야권연대가 계속 유지되게 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양당에 앙금이 남을 게 분명한데, 시너지 효과가 날까.

 “역대 선거를 보면 투표일 한 달 전 세 번 정도는 구도가 출렁인다. 위기가 찾아오면 그 위기를 수습하는 힘으로 동력을 얻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야권으로선 최대 위기를 건너면서 지지층 결집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공천 악재도 털어버린 측면이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할 시점에 공천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이 대표와 백혜련 후보의 문제가 정리되면서 새누리당이 다소 실망했겠다.

 “새누리당은 이정희 대표가 버티자 내심 환호했다. ‘MB 심판론’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야권 심판론’ 내지 ‘역심판론’을 내세웠는데, 이 대표가 딱 걸린 셈이었다. 그러나 전략을 수정하게 됐다.”

●결국 야권이 악재를 차단하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새누리당도 악재가 불거졌을 때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신속한 모습이더라. 대선을 앞두고 치르는 큰 판이라 그런 것 같다. 새누리당의 경우 공천장을 줬다가 조기에 박탈한 경우가 6건(서울 강남갑·을 박상일·이영조 후보, 경북 고령-성주-칠곡 석호익 후보, 경북 경주 손동진 후보, 제주을 부상일 후보, 비례대표 이봉화 후보)이나 된다. 악재로 번지기 전에 싹을 자르더라.

 “6명 중 여성 비하 발언(‘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화했다. 여성은 XX 하나가 더 있지 않느냐’)으로 낙마한 석호익 후보는 결국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석 후보는 논란이 커지자 새누리당에 자진해 공천장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한다. 대신 현역인 이인기 의원한테만 공천을 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이를 받아들여 당시 전혀 출마 준비를 하지 않았던 고용노동부 수석 전문위원을 찾아 공천했다. 정치 신인인 공무원을 공천하자 석 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석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려고 이인기 의원은 공천하지 말아달라고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08년 총선 때 박근혜 위원장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한 말은 배신감을 토로한 여러 가지 말 가운데 백미(白眉)로 꼽힌다. 공천이란 게 한정된 자리를 나누는 것이라 결과가 나오면 배신감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을 듯한데.

 “민주당에선 손학규 고문과 정동영 고문이 한명숙 대표에게 배신감이 큰 것 같다. 손 고문의 경우 ‘이번은 내 판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공천에 관여를 안 하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지역구에서도 측근들이 계속 떨어졌고 비례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공천에 관여도 안 하고 있는 손 대표 쪽에 한명숙 대표가 ‘19대 국회에 전략가가 필요하니 비례대표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헌태 전 전략기획위원장을 추천했는데, 나중에 당선이 불투명한 24번을 줬다. 원래는 그것보다 더 뒤 순위였다고 한다. 측근인 이철희 전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는데 75명의 면접자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이들보다 경력이 일천한 당료들도 다 들어갔는데, 면접도 안 시킨 것이다. 정동영 고문 입장에선 자신과 가까운 유종일 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이나 유재만 변호사 등이 공천을 받지 못한 게 배신일 수 있다. 두 진영은 사실상 학살을 당했다.”

 “새누리당이 경북 포항에 이상득(SD) 의원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박근혜 위원장의 언론특보를 공천한 걸 꼽을 수 있다. 평소 SD는 이명박계 내에서도 박근혜계에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SD와도 좀 상의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있다.”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3, 4번이 가장 큰 배신을 당했다고 본다. 민주통합당은 청년 비례대표 4명을 공천 확정권에 넣는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둘은 당선과는 거리가 먼 번호인 20번대 후반대를 받게 됐다. 판은 판대로 떠들썩하게 벌여놓고, 약속은 안 지킨 거다.”

 “새누리당도 20대를 비례대표로 뽑겠다고 해서 공천 신청을 많이 했는데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주덕한 백수연대 대표가 카드론으로 150만원까지 빚져가며 공천 신청을 했다. 비례대표 후보 등록 비용만 300만원이다.”

●유재만 변호사는 민주통합당에선 보기 드문 검찰 고위 간부(서울지검 특수1부장) 출신이다. 검찰과 국정원 간부들이 양당에서 물먹은 예가 많다.

 “민주통합당에선 유재만 변호사뿐 아니라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이 물먹었다. 공심위원장과 공심위원들이 진보 일색이었기 때문에 경력이 해가 됐을 거다.”

 “새누리당에서도 김성호 전 국정원장, 서울고검장 출신인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천 탈락했다. 반면 김회선 전 국정원2차장은 서울 서초갑에 공천을 받아 명암이 엇갈렸다.”

●박근혜계 핵심 가운데 이혜훈 의원(서울 서초갑)이 김회선 전 국정원 2차장에게 밀려서 탈락한 건 의외다.

 “이혜훈 의원은 최고의 희생양일 수 있다. 이 의원을 공천하면 고승덕 의원(서울 서초을)까지 공천을 줘야 했다. 박근혜 위원장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서울 도봉갑에 공천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후보가 출마한 곳이다. 도봉갑에 조윤선 의원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했는데 백지화됐다. 새누리당엔 워낙 험지여서 그렇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불러온 고승덕 의원은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다.

 “고승덕 의원은 ‘당에서 가라는 곳으로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서울 노원병으로 가서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이랑 붙으라고 했다고 한다. 고 의원은 웬만하면 가겠는데 노원병 얘기를 하니까 출마를 접었다. 노원병도 새누리당에선 기피 지역구 중 하나였다.”

●새누리당의 경우 친박연대 출신들도 공천을 많이 받더라. 박근혜계의 ‘의리공천’인가.

 “네 명이 공천 전쟁에서 살아남았는데, 송영선 의원은 대구에서부터 돌고 돌아 경기 남양주에서 공천을 받았다. 김을동 의원(서울 송파병)은 아들인 배우 송일국씨도 고려해 공천했다는 얘기가 있다. 노철래 의원은 서청원 전 대표가 밀었다는 얘기가 있다. 서울 강동갑에서 경선을 하기로 했는데 이곳에서 빼서 경기도 광주에 공천했다. 현역 재선인 정진섭 의원을 날리면서다. 김정 의원도 중랑을에서 이명박계 유정현 의원을 밀어내고 공천을 받았다. 이런 과정을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송영선 의원의 경우처럼 양당에서 ‘회전문 공천’이 극심했다. ‘히든 카드’로서 적절한 지역을 찾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버리기는 아깝고 공천 줄 곳은 찾기가 쉽지 않은 계륵(鷄肋) 같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가장 현기증 나게 뱅글뱅글 돌았을까.

 “민주통합당 김한길 전 의원은 히든 카드에 해당하는 경우지만 민주당이 여론조사를 무지하게 돌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 퍼져 정대철 고문이 항의전화까지 했다더라. 정 고문 아들(정호준)이 출마한 중구까지 넣어 여론조사를 돌린 것이다. 당직자가 김 전의원에게 전화해 ‘송파 조사가 잘 나왔습니다’라고 하니까 김 전 의원이 ‘이젠 송파까지?’라고 하더라. 그는 결국 광진갑으로 낙착됐다.”

●민주통합당에선 한명숙 대표의 공천 리더십을 놓고 뒷말이 많다. 한 대표가 자기 사람들을 많이 챙겼나.

 “한 대표보다 당직, 지도부, 공심위 등에 포진한 486세대가 많이 챙겼다고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당에서 ‘누나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자기 세력이 없어 당내 486세대와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멘토 역할을 하던 이해찬 전 총리와도 거리가 생겼다. 486세대와 이 전 총리 간에 앙금이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각 최고위원들도 총선은 ‘4년에 한 번씩 오는 큰 장’이라 체면을 내던지고 자기 몫을 챙겼다. 한 대표는 다른 최고위원들에게 휘둘리면서 오히려 당 대표 몫만큼도 못 챙긴 측면이 있다. 여기서 배제된 혁신과 통합 그룹의 불만이 임종석 전 사무총장 건으로 분출된 것이다. 결국 문재인 상임고문이 움직여 임종석 전 사무총장을 사퇴시켰다.”

●486세대인 이인영 최고위원은 인터뷰에서 한 대표 라인의 공천을 비판했고, 박영선 최고위원도 공천 불만을 얘기하며 사퇴까지 하지 않았나.

 “당 주변에선 두 사람이 반발한 건 10개를 챙기다가 1개를 못 챙기니까 반발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번 공천은 총선보다는 대선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대선용 공천’이란 말이 있다.

 “새누리당에 그런 관점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반(反)MB 선거로 판을 가게 해선 안 된다는 게 공천에서 드러났다. 박근혜 위원장이 대선주자니까 그럴 것이다. 민주당은 그런 게 잘 보이지 않았다. ‘이 후보가 19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대선까지 볼 땐 어떤 일을 할 사람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당에 중도층이 비어 있는 상황이 됐다.”

●박근혜 위원장의 동생인 박근령씨가 선진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무소속으로 나온다는데, 박 위원장이 반응을 보인 일이 있나.

 “박 위원장 측근인 강창희 전 의원이 선진당에 공천을 주자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박 위원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령씨는 ‘보수 대연합을 위해 언니를 도우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 아닌가. 출마 여부도 언니와 상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거의 왕래가 없다고 한다.”

●기자들이 모여 있는 국회 정론관이 요즘 출마 예정자들이 회견을 하느라고 문전성시(門前成市)일 텐데.

 “얼마 전 국회에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나타나 자신이 어떤 후보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폭로했다. 상식적으로 여성이 자기가 본 피해를 저렇게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게 이해가 가는 일인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세종시 출마 선언을 한 날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하고 둘이서 기분 좋게 회견장을 나가는데, (공천 탈락한) 전혜숙 의원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한 대표가 얼굴이 사색이 돼 도망치듯이 피하더라. 어떤 의원은 ‘관을 짜 놓았다’면서 공천을 달라고 지도부를 겁주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여론조사 경선’은 말 자체가 잘못이다. 실제론 ‘전화투표’다. 오차범위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 문제가 됐던 경기 안산단원갑 백혜련 후보도 3표 차로 졌다는데 오차 범위를 따지면 패했다고 할 수 없는 거다. 전화로 경선하는 이런 기형적 제도는 수술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일부 지역에 적용한 ‘공론조사’를 섞은 방식의 시민공천배심원제도 대안 중 하나일 수 있다.

 가장 부패한 선거는 지역의 조합장, 이장 선거라는 말이 있다. 선거판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혼탁하다는 거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꿀 필요가 있다. 모바일 선거는 규모가 큰 선거구엔 어울린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양당이 동시에 경선을 치르는 오픈 프라이머리로 바뀌어야 한다.”


참석자

남윤호 정치부장, 강민석 국회팀장, 신용호 새누리당 팀장, 김정욱 민주당 팀장,

새누리당팀=김정하, 정효식, 백일현, 허진, 손국희 기자
민주당팀=박신홍, 강인식, 양원보, 김경진, 류정화 기자


중앙일보 총선홈 지역구별 후보자 상세정보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