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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 (10) 포천 허브 아일랜드 임옥 대표

중앙일보 2012.03.23 04:30 Week& 7면 지면보기
봄이다. 앙상했던 가지에 싹이 움트고 겨우내 척박했던 들판엔 생기가 돈다.


6개월 남았다고 한 삶 … 13만평 허브농장 가꾸며 건강 되찾았죠

그런데 자신에겐 하루하루가 싱그러운 봄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극복하고 13만 평의 허브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임옥(50) 대표 얘기다.



1996년 여름 임 대표는 간 기능이 정지해 살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인이 소개한 경기도 포천의 후미진 땅을 사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땅이라도 남겨주면 농사를 지어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허브를 가꾸며 새 인생을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관에 들어가 눕는다는 심정으로 하루를 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오기를 15년째. 그는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했고, 그가 운영하는 허브 아일랜드는 주말이면 1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이 도약하는 봄이 돌아오는 기적처럼 말이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새생명이 움트는 봄, 시한부선고를 이겨내고 국내 최대 허브관광농장인 허브아일랜드를 일궈낸 임옥대표를 만났다.


꽃샘추위가 들이닥친 지난 10일. 영하의 날씨였지만 허브 아일랜드에는 봄을 맞으러 나온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앞치마 둘러매고 허브 정원을 손질하던 임옥 대표가 부랴부랴 카페로 뛰어왔다. “아휴, 제가 정신이 없어서 조금 늦었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임 대표는 밭일을 하다 손님을 맞으러 뛰어나온 동네 아주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었다.



-건강은 어떠세요.



 “지금은 아주 건강해요. 포천에 내려오고 2년 만에 간이 깨끗이 나았어요. 여기 주변이 잣나무 숲인데 우리나라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풍부한 곳이래요. 매일 허브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치유된 것 같아요.”



 16년 전 임 대표는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간 기능 정지의 여파로 폐와 신장도 차례로 망가졌다. 몸져누운 임 대표는 그대로 생을 포기할까도 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허브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는 기업연수원을 지으려고 했어요. 집을 3분의 1 정도 짓다가 외환위기가 왔고 기업 연수도 자연히 줄었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원 가꾸기로 아이템을 잡고 식물은 허브로 결정했어요. 허브의 한 종류인 ‘애플 제라늄’을 처음 접했는데 풀에서 사과향이 나더라고요. 내가 신기하다고 느끼면 남도 그렇게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식물이나 정원을 가꾸는 데 관심이 있으셨나요.



 “아뇨.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어요. 커피숍 종업원으로 일하던 두 명을 데리고 시작했어요. 처음엔 텐트를 치고 살았어요. 화장실도 땅 파고 스티로폼으로 벽만 만들었어요. 세 사람 모두 ‘농사’의 ‘농’자도 몰랐어요. 잡초 뽑다가 허브도 다 뽑아버리고, 50만 평에 뿌려야 하는 씨앗을 한 평에 다 붓기도 했어요.”



 초창기 허브 아일랜드는 허브제품 판매점 ‘향기가게’와 비닐하우스로 만든 식물원으로 시작했다. 약 1만㎡(3000평)에서 시작한 허브 아일랜드는 42㎡(13만 평)로 커졌고, 하루 두세 명밖에 안 되던 방문자가 지금은 주말 1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지금 허브 아일랜드는 규모나 방문자 수에서 국내 최대의 허브 관련 관광농장이다. 모두 340종의 허브가 있으며, 2010년에는 박물관 인증도 받았다.



-1년 입장객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성공 비결이 뭘까요.



 “가족은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세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허브 아일랜드의 강점입니다. 20대 여성이나 젊은 커플에게 인기를 끈 건 동화 속 마을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 때문이에요. 지난해에 베네치아 가면축제에 가서 가면을 사왔어요. 여태 전 세계 허브 관련 도시를 여행하며 수집한 소품이 허브 아일랜드 곳곳에 있어요. 다기세트, 허브 압화 액자, 중세 유럽풍의 드레스, 봉재 인형 등 여자가 좋아하는 소품이 많죠.”



 야외정원의 꽃은 4월 말이 돼야 만발한다. 하지만 허브아일랜드는 이미 봄이었다. 허브와 각종 식물이 살고 있는 온실은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했다. 식물원 출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산타마을에서도 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당나귀에 올라탄 아이는 허브 밭고랑 사이를 지나며 언제나 싹이 올라올까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층 따사로워진 햇살을 받으며 잔디밭에서 뛰노는 꼬마들에게 봄이 이미 시작되었다.



●임옥 1962년 서울 출생. 서울여상을 졸업한 뒤 한국은행·대한항공 등에서 일하다가 1988년 커피전문점 ‘춤추는 염소’로 사업을 시작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공예 강사로 일하다 1993년 기업연수 전문회사 세한레저피아를 차렸다. 1996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1998년 경기도 포천에 허브 아일랜드를 개장했다. 허브 아일랜드(herbisland.co.kr) 개장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이달 말까지 재스민 축제가 열린다. 성인 3000원. 학생·단체·경로 2000원. 031-535-6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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