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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21)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데

중앙일보 2012.03.23 04:30 Week& 4면 지면보기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서양의 최고급 미식문화는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식기들의 화려한 변주에 다분히 의존한다. 멜라민 그릇에 담은 성의 없는 갈비탕보다는 뚝배기가 선호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뚝배기에 찰랑찰랑 담은 설렁탕은 먹어보기도 전에 군침을 돋운다. 그래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유사 뚝배기까지 팔린다. 뚝배기의 고유 기능은 전혀 없지만, 모양이라도 비슷하면 다른 그릇보다 손님들이 더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런 뚝배기의 요즘 변신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구석이 있다. 유사 뚝배기야 웃고 넘어가더라도, 지나치게 그릇이 커지고 있는 점이다. 커진 뚝배기는 더 많은 국물을 담아야 한다.


뚝배기 커진다고 맛이 좋아질까요

 친구와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술안주로 갈비찜을 시켰다. 놀랍게도 찜이 아니라 ‘탕’이었다. 찜이란 고유한 요리 형식이다. 증기로 쪄서 국물이 바특하거나 걸쭉한 소스가 요리를 감싸고 있어야 한다. 묽은 국물이라면 하다못해 자박자박하게 담겨야 그나마 봐줄 수 있다. 그런데 그 요리는 갈비탕의 간장 버전이었다. 항의하자 그렇게 안 하면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물을 많이 주길 원한다는 뜻이었다. 거대한 그릇에 담긴 그 갈비찜은 적어도 1L 이상의 국물을 남긴 채 우리 식탁에서 치워졌다.



 언제부터인가 요리의 국물 양이 크게 늘었다. 찜은 탕이 되고, 탕은 홍수가 된다. 모르긴 몰라도 뚝배기 크기도 근래 10여 년 동안 훨씬 커졌다. 표준형이라고 할 순댓국이나 설렁탕 뚝배기는 1.5배쯤 커진 것 같다. 그 변화는 결국 우리 음식문화의 스타일을 바꾼다. 서민 음식값은 어려운 경제 때문에 낮은 가격을 유지한다. 그런데 국물 양은 훨씬 늘었다. 쓸 수 있는 재료비는 같은데, 국물을 늘리려면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대부분 인공조미료의 힘을 빌리게 된다. 소금도 훨씬 더 많이 넣어야 한다. 그 국물은 다 먹어도 문제, 버려도 문제다. 한국인의 소금 섭취량은 이미 위험수준이라고들 하고, 버린 국물은 강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뚝배기의 크기뿐 아니라 먹는 방법도 주목해야 한다. 뚝배기의 장점은 보온 능력이다. 뜨거운 국물을 다 먹을 때까지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굳이 뚝배기를 따로 불에 올려 끓일 필요가 있을까. 이것 역시 근래의 유행이다. 온도가 잘 떨어지지 않는 뚝배기는 다 먹어갈 때까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뜨거워서 혀는 화상을 입고,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소금을 넣고 자극적인 쪽으로 맛내기를 하게 된다.



 시절에 따라 유행은 바뀐다. 음식 문화도 알게 모르게 변화를 겪는다. 서양에는 캐서롤이라는 오지그릇이 있다. 오븐에서 나와도 오랫동안 따뜻하게 요리를 지켜준다. 서양은 이 그릇을 이제 거의 쓰지 않는다. 식탁에 캐서롤을 올려놓고 먹는 경우는 더 드물다. 전통 뚝배기를 우리 식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크기가 더 커지지 않기를, 안에 담긴 국물 양이 더 많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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