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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가스관, 북한 빼고" 中 파격 제안

중앙일보 2012.03.23 03:00 종합 2면 지면보기
중국이 북한 변수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북한~한국 가스관 연결 사업의 대체 노선으로 러시아~중국 산둥(山東)반도~한국 서해 노선을 제안했다. 중국석유천연가스(CNPC) 장제민(蔣潔敏) 회장은 지난달 16일 베이징에서 한국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을 만나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과 관련해 중국을 경유해 서해를 지나는 해저 노선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중앙일보·JTBC가 단독으로 입수한 두 사람 간 회의록에 따르면 CNPC 장 회장은 “산둥반도 웨이하이(威海)에서 한국으로 해저 가스관을 부설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는 것이 북한을 경유하는 방식보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제안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의 한국 측 사업 파트너인 한국가스공사도 CNPC 측과 접촉하고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웨이하이에서 백령도까지는 174㎞이며, 서울까지는 380㎞다. 현재 논의 중인 러시아~북한~한국 가스관의 경우 북한 통과 거리가 700㎞에 이른다.





중국은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천연가스전과 중국과의 접경인 부랴트를 잇는 가스관을 중국 내로 연결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천연가스 가격 협상이 완료되면 3~4년 안에 이 가스관을 베이징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CNPC 장 회장의 제안은 이르쿠츠크~베이징 가스관 노선을 웨이하이까지 연장한 뒤 서해를 통해 한국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업계 소식통은 “중국이 한국과 함께 공조를 이뤄 러시아와 천연가스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에서 나온 제안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한·중 가스관 사업 제안을 주도하며 한국 측에 협력을 요청하게 됐다는 것이다.



 CNPC는 중국 국무원(행정부) 석유공업부에서 분리된 국영기업이다. CNPC의 회장은 정부 부처 장관급에 준하는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한 명인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법위원회(공안 담당) 서기도 CNPC 회장을 역임했다. 공산당·정부 부처와 긴밀히 연결된 거대 국영기업 측이 웨이하이라는 구체적인 입지까지 거론하며 사업 구상을 밝혔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 기관과 사전 검토를 거쳐 새 노선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경유 노선은 북한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이 급진전될 수도 있다.



 안보 전략상 서해 해저 가스관은 한국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 변수에 발목이 잡혀 있는 남북·러시아 가스관 사업이 속도를 내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해를 통해 한·중 양국이 에너지 인프라로 연결되는 만큼 양국 관계도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서해상에서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도발 리스크를 중국과 함께 분담하는 효과도 있다”며 “그러나 중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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