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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창호도 졌다, 한국 이원영 딱 1명 이겼다

중앙일보 2012.03.23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연어의 귀향처럼 바둑은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는가. 이창호 9단이 16세 소년 미위팅에게 패하고 믿었던 이세돌 9단(왼쪽)마저 17세 당이페이에게 패배하면서 한국 바둑은 쓰나미급 충격에 휩싸였다. 양 이(李)가 무너진 한국은 비씨카드배 32강전에서 중국에 1승10패를 기록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렸던 바이링(百靈)배가 지진이라면 서울에서 이어진 비씨카드배는 쓰나미였다. 비씨카드배 32강전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해 온 한국 바둑의 정예들이 중국의 신예들에 의해 초토화됐다.



이창호 9단이 16세 미위팅 3단에게 지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미위팅은 64강전에서 박정환 9단을 꺾은 강자라 이창호 9단도 질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세계랭킹 1위 이세돌 9단이 17세 당이페이 3단에게 패하자 걷잡을 수 없는 충격파가 한국 진영으로 몰려왔다. 한국 바둑의 상징인 ‘양 이(李)’가 중국 소년 기사들에게 무너졌다. 중국 신예들이 결코 넘을 수 없다고 믿어왔던 ‘이세돌의 벽’이 허무하게 뚫렸다.



한국 신예 이원영(20) 3단이 중국 16위 멍타이링(25) 6단을 격파하며 잠시 한숨 돌리는 듯싶었으나 이후는 추풍낙엽이었다. 박진솔 3단, 온소진 4단, 허영호 9단, 김지석 8단, 이원도 4단, 나현 2단, 김기용 6단, 김승준 9단 등 8명이 모조리 중국 기사들에게 패배하며 대중국전 1승10패를 기록했다. 한국 기사는 3명이 16강전에 진출했는데 박영훈 9단과 백홍석 9단은 같은 한국 기사를 이겼고 오직 이원영 3단 한 명만이 중국과의 전투에서 생존했다. 한국은 랭킹 1~10위 기사 중 8위의 박영훈만 살아남은 반면 중국은 랭킹 1∼10위 기사 중 8명이 건재하다. 이 참패는 일회성일까, 아니면 한국 바둑 몰락의 전주곡일까.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수많은 전조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일회성’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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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감자, 입단제도=일본 바둑은 프로기사가 일본기원 직원 신분일 만큼 폐쇄적이다. 쇠락 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한국은 소수 천재들의 힘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입단제도에서는 일본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입단이 힘들어지면서 프로를 지망하던 영재들이 바둑을 떠났다. 비판이 커지자 한국기원은 지난해 8개월의 논란 끝에 기존의 ‘1년 10명 입단(남자 8, 여자 2)’에서 ‘1년 12명 입단(남자 8, 여자 2, 15세 미만 2)’으로 두 명 늘렸다. ‘15세 미만’ 2명이 추가된 것이다.



 중국은 매년 15∼25명을 입단시키고 14세 이하 는 인센티브를 주어 9∼11세 영재들을 대거 뽑았다. 이들이 이번 한국을 초토화시킨 주역들이다. 바둑으로 대성하려면 ‘15세 이전’에 프로가 돼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은 병목현상 탓에 한계선이라 할 ‘18세 입단’이 주류를 이룬 지 오래다. 이대로 가면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렸지만 묵살됐다. (※참고로 조훈현 9세, 이창호 11세, 이세돌 12세 입단)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올여름 처음으로 15세 미만 영재 2명을 뽑는다. 하지만 가을에도 영재 2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참패를 모두 목격한 만큼 기사회를 통과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바깥세계의 눈엔 2명 늘리기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로 비친다. 하지만 입단제도는 프로들이 만들고 이사회는 추인하는 정도다. 선수들이 룰을 만들기에 문을 넓히기가 쉽지 않다는 고백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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