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경제정책 기틀 다진 송인상, 한 세기 삶 회고

중앙일보 2012.03.23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경제계 원로 송인상(98·사진)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의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이 출간됐다. 1940년대 말부터 경제관료로 일한 그의 한 세기 가까운 삶에는 해방 직후의 혼란과 6·25 전쟁의 폐허라는 어둠을 딛고 우리 경제 발전의 여명을 밝힌 과정이 담겨있다.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 펴낸 98세 원로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 상대의 전신)를 나온 엘리트 은행원이었던 그는 49년 재무부 이재국장에 발탁됐다. 물가와 재정을 안정시키는 일을 맡아 대한민국 정부 최초의 국채인 건국국채 발행, 한·일 무역회담을 주도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한국은행 부총재 자격으로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가입을 추진해 결국 성사시켰다. 57년 부흥부 장관이 된 그는 원조자금의 배분을 담당하는 경제조정관을 겸하면서 전후 경제를 부흥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평전에는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해외 파트너들과 끈질긴 대화와 치열한 협상을 벌였던 과정이 잘 드러난다. 원조기구 보고서가 한국에 제안한 농업위주의 발전전략과 달리 공장·발전소 등 설비투자에 힘을 쏟아 공업화의 초석을 다진 일, 원조물자를 가공해 수출을 시작했다가 원조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던 일 등은 당시의 절실했던 경제상황도 짐작케 한다.



  미국 측의 환율인상 요구로 벌어진 갈등, 일제의 유산인 중앙청을 당장 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대안으로 광화문에 쌍둥이 빌딩(현재 미국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짓게 된 사연, 58년 재일교포 북송사태로 일본과의 통상이 중단되자 항구에서 썩어가는 수산물 등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한 일화도 소개된다.



 화폐개혁에 얽힌 진통도 등장한다. 그는 화폐 교환과정에서 일정금액 이상은 정기예금으로 묶어 통화량을 줄이고자 했지만 ‘재산권 침해’라는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었다. 크고 작은 정책적 이견을 겪었어도 그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큰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애국자였음을 확신한다”며 “당시 젊은 우리가 좀 더 잘했더라면 그의 말로가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평전에서 말했다.



 59년 재무부 장관이 된 그는 당장의 궁핍을 넘어 장기적 안목으로 경제발전을 구상했다. 그가 만든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은 나중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모태가 됐다. 그는 미래의 계획만 아니라 과거를 기록하는 일도 중시했다. 앞서 부흥부 장관 시절 원조자금의 집행과 관련해 무려 4200쪽의 『부흥백서』를 펴낸 것이 대표적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70년대에는 EC대사로 유럽과의 통상 확대에 힘썼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행장을 지냈다. 이후엔 동양나이론 회장, 전경련 부회장 등으로 재계에서 활약했다. 세계적 봉사단체 국제로타리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현재 효성그룹 고문을 맡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