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선희의 시시각각] 거짓말의 부메랑

중앙일보 2012.03.23 00:00 종합 38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현장기자 시절. 모 기업의 주요한 정책 전환과 관련된 내용을 미리 취재했었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를 ‘특종’ 혹은 ‘단독기사’라 한다. 이 기사는 경제섹션 톱으로 결정돼 이미 써서 넘긴 상태였다. 그때 해당 회사의 홍보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내가 이를 취재한 사실을 알고,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까지 걸고 맹세를 했다. 그래서 기사를 내렸다. 그의 절박함에 뭔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다른 내막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틀 후. 그 회사 사장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그 담당자는 말했다. “사장님이 발표하실 내용이 미리 신문에 나면 깨질까 봐 그랬어요.” 그 순간, 기자인 내 자신이 무서워졌다. ‘내가 어쩌다 한 가장이 자기 가족을 걸고 거짓 맹세를 하도록 했을까.’ 이 일로 한동안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 사건은 내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어쩌면 거짓말은 하는 사람보다 당하는 사람의 영혼에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요즘. 우린 거짓말이 뒤통수를 치는 세상에 산다. 가장 최근 불거진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거짓말만 해도 릴레이 하듯 이어갈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그래도 도덕적일 거라고 믿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조작했다. 자신을 위해 여론조사에 응해준 지지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는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이 일이 알려진 후 그의 반응은 이랬다.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 드린다. 이 때문에 경선 결과에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재경선을 하겠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 봐야 대상이 200명 정도라고.



 2010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터졌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대통령 비방 게시물을 자기 블로그에 올린 뒤 불법 압수수색을 받는 등 사찰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사건은 청와대 핵심라인에서 지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일로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두 달이나 이 잡듯 뒤졌다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과잉충성 범행이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지나서 음모론으로 떠돌던 청와대 개입설은 일부 실체를 드러내며 다시 불거졌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그가 사실을 숨겼던 이유는 ‘충성심과 선의’였단다.



 나경원 전 의원과 김재호 부장판사 부부는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을 고발했었다. 그들이 “김 부장판사가 과거 나 의원을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줄 것을 담당 검사에게 청탁했다”고 방송한 내용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소청탁’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데 이 두 부부는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고발인과 참고인으로 소환해도 나가지 않는다.



 돌아오는 월요일이 천안함 2주기다. 그런데 아직도 천안함이 미군 잠수함에 의해 침몰됐다는 등의 음모론은 여전하다. 최근 조선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21.9%나 됐다. 70여 명의 전문가가 동원돼 과학적으로 침몰원인을 밝히고, 북한 소행이라는 여러 정황 증거를 들이대도 그렇다. 믿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지 않으면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다. 왜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됐을까.



 그게 음모론과 의혹이 사실로 둔갑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 청와대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거짓말을 하고, 거짓임이 들통 나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심지어 당당하게 자기 미화까지 하는 사회에서 진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천안함의 영령들을 아직도 음모론과 의혹 속에서 잠들지 못하도록 하는 건,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수없이 당한 거짓말에 내상(內傷)이 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모론을 탓하기 전에 거짓말 추방운동부터 벌이는 게 나을 것 같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