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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돈을 추적하라”

중앙일보 2012.03.23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실장
밥 우드워드는 언론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1972년 워싱턴 포스트에 실은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사는 닉슨 대통령을 사임시켰다. 끈질긴 추적과 사실 확인, 권력의 압력을 이겨낸 진실 보도는 기자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알란 파큘라 감독의 영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1976)’는 그 전설의 기록이다.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퍼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먼) 기자가 74년 쓴 같은 이름의 책을 기초로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생생하게 재연했다.



 사건은 워싱턴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좀도둑 5명이 침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전기와 도청기, 권총, 100달러 지폐 다발…. 여느 좀도둑 사건에서는 볼 수 없는 증거물들이 나왔다. 의문을 풀어가는 데 한계를 느낀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 제보자)’의 도움을 요청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빨간 깃발을 내걸어 신호하고, 어두운 밤 택시를 갈아타며 지하주차장에서 스파이처럼 접선했다.



 우드워드는 “풀리지 않는 퍼즐 같다”고 했다. ‘딥 스로트’가 던진 힌트는 “돈을 추적하라(Follow the money)”였다. 돈은 거짓말을 안 한다. 좀도둑들이 갖고 있던 수표를 추적하자 닉슨 재선위원회, 재정담당자가 나왔다. 닉슨은 워싱턴 포스트에 압력을 넣고, CIA를 이용해 FBI의 수사를 방해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그해 11월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건은 그 이후 점점 커졌다. 법무장관 존 미첼이 민주당 정보수집을 총지휘했으며, 불법도청과 정치공작이 전국적으로 벌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문서 위조와 불법 정치자금과 거액의 탈세도 드러났다. 닉슨은 “백악관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잡아떼다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했다.



 마침내 ‘결정적 증거(smoking gun)’인 백악관 집무실의 녹음테이프 공개를 둘러싸고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는 무리수까지 두는 바람에 벼랑 끝에 내몰렸다. 닉슨이 도청에 직접 개입했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치명상을 입은 건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점점 영화 속 그 장면을 닮아가고 있다.



 여론에 불을 지른 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다. 2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야당을 훈계하고, 국민을 향해 호통쳤다.



 도대체 왜 기자회견을 한 것일까. 그는 자기가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스로 ‘몸통’이라고 떠드는 ‘몸통’은 없다. ‘몸통’이라고 우기며 그게 무슨 대단한 의리인 양 으스대는 건 조폭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꽁지털’의 행태다.



 이영호 전 비서관이 ‘깃털’이라면 진짜 ‘몸통’은 누굴까. 실마리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역시 돈이다. 이 전 비서관이 장진수 주무관에게 줬다고 시인한 2000만원, 류충렬 공직복무관리관이 전달한 5000만원, 최종석 행정관으로부터 받은 4000만원은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배후가 있다면 그 주머니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예산일 수도 있고, 정치자금일 수도 있다. 워터게이트에서처럼 돈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동안의 활동을 추적하면 누구를 위한 조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컴퓨터는 파기했지만 내부 제보자가 생겼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만 사찰한 건 아니다. 정두언·정태근·남경필 의원이 항의한 불법 사찰과는 관련이 없는지, 그 외 어떤 일을 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영포(영일·포항)라인’이 실체를 드러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어떻게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할 수 있는가. 정부 조직을 비선(秘線), 사조직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심지어 민정수석이 바로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미리 알고 증거를 없앤 일, 검찰과 형량을 협의했다고 하는 녹취록, 총리실 조직을 하수인으로 부린 일 모두 비서관의 역량을 넘어선다. 이런 정황을 무시하더라도 일개 비서관이 무엇 때문에 비선조직을 만들어 고유 업무도 아닌 사찰활동을 했겠는가.



 조선시대 임금들은 공신에게 시달렸다. 왕위를 물려주기 전에 가장 먼저 공신부터 정리했다. 후계자를 위해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을 위해, 87년 체제 퇴임 대통령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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