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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64) 한남동을 찾아온 문재인

중앙일보 2012.03.23 00:00 경제 6면 지면보기
2005년 3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는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던 이 부총리는 이날 업무보고를 마지막으로 사퇴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재경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을 크게 칭찬했다. [중앙포토]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한남동 집을 찾은 건 2005년 3월 초였다. 사표를 내고 출근을 않던 때였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건 2월 말, 공직자 재산변동 내역을 공개한 직후였다. 20여 년 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사둔 경기도 광주 땅이 말썽이 됐다. 2004년 취임 당시만 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일이다. 누가 갑자기 이 문제를 들쑤셨을까. 알 수는 없으되, 짐작은 되었다.

사표 내자 찾아온 문재인 수석 “대통령이 대안 없다 하신다”에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맡기라”



 “아버지를 한 방에 보낼 카드가 있다는 말이 청와대 쪽에서 나와요.” 딸 아이가 걱정한 것이 한 달여 전이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기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쏟아졌다. 누군가 계속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위장 전입을 했다” “재임 중에 땅을 팔았다” 모두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해명은 아예 안 통했다. 순식간에 나는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이래선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주변의 반대에도 사표를 냈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문재인을 보내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철저히 조사해서 해명해 드리라고 하십니다.”



 정면 돌파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과가 나온다 한들 곧이곧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견디고 싶지 않았다. 시작이 어디인지 짐작이 가는 상황. 정나미가 떨어져 있었다.



 “늦었습니다. 대통령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더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론은 그래서 무섭다. 의혹이 불거진 순간, 나는 부동산 투기꾼으로 낙인찍혔다.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 투기가 근절되지 않은 것이 내 탓인 것처럼 몰아갔다. 내가 추진하던 부동산 세제 개편마저 의도를 의심했다. 어떻게 남겠는가.



 “대통령께서 대안이 없다고 하십니다.”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맡기시면 될 겁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만두겠습니다. 한 가지 후회되는 건 연말에 못 떠났다는 것뿐입니다.”



 두 달여 전인 2004년 12월 31일. 나는 정부 새 예산안을 확정 지은 후, 김광림 차관을 통해 청와대에 사표를 전달했다. 부동산 세제 문제를 놓고 청와대 정책실과 한 차례 마찰을 빚은 뒤였다. 당시 유행어로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1일 간부들을 집에 불러 떡국을 먹었다. 나름의 작별 파티였다. 다음날엔 퇴임사까지 준비했다.



 그만두지 못한 건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었다. 정찬용 인사수석은 내 사표를 전달하려 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갑자기 이기준 교육부총리 파문이 터졌다. 이런저런 문제에 얽혀 취임 한 달이 되지 않아 낙마한 것이다.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이 줄줄이 책임을 진다며 그만뒀다. ‘하필 내가 그만두려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대통령이 갑자기 부부동반 만찬을 제의한 게 바로 그때였다. 1월 8일 토요일, 청와대 관저였다.



 저녁 분위기는 밝고 부드러웠다. 고풍스러운 잔에 포도주가 담겨 나왔다.



 “오랜만에 이러니까 참 기분이 좋습니다.” 와인잔을 들고 대통령이 웃었다. 처음 볼 때처럼 나직한 목소리. 그렇게 흥분을 잘 하면서도 내게는 목소리 한번 높인 적이 없다.



 “부총리께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경제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잘 될 것 같아요.”



 부부 동반 식사다. 막상 대통령 부부를 대하고 보니 “죄송하지만 사표를 받아달라”는 모진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덕담만 건네다 헤어지고 나니 어정쩡해졌다. 대통령은 “더 수고해달라”며 사표 얘긴 꺼내지도 않았다. 나 역시 “정말 그만두겠다”고 말하지도, 그렇다고 사표를 돌려받지도 못했다. 그렇게 애매한 상태로 눌러앉게 됐다. 미련이 먼저 나고 꾀가 나중에 난다더니…. 지금 돌아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그만뒀으면 모두에게 좋았을 것이다.



 퇴임식은 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재정경제부는 우리 경제 운영에 있어서 중추신경 역할을 해야 합니다. 권한과 성과를 가지고 관련 경제부처들과 다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처들과 불협화음 내지 말아달라. 쓴웃음이 났다. 적어도 나는 이런 당부를 할 자격이 없다. 청와대 정책실, 여권 실세들과 끊임없이 각을 세웠다. 충돌 없이 정책을 실행할 수 없었다.



 ‘지난해 주저주저 망설이면서 공직에 다시 나섰습니다마는 이제 미련 없이 떠납니다. 재정경제부 직원 모두 부디 건승하시기를 빕니다’.



 다시는 공직에 오를 일이 없을 거란 걸 알았다. 진심으로 미련이 없었다. 공직을 떠나 떠돌이처럼 살다 두 차례나 중책을 맡았다. 모두 경제가 부서질 대로 부서진 상황이었다. 최선을 다했다. 다시 해보라고 한대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해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장수를 구하지 못한 기분이다.” 노 대통령은 물러나는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퇴임 후 한동안은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를 흠집 냈던 의혹에 대해 소송을 검토하기도 했다.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호를 짓고 난 뒤였다. 지인은 한 한학자에게서 단어 세 개를 받아와 내게 건네주었다. 산처럼(如山·여산), 바위처럼(如石·여석), 물처럼(如川·여천). 여천을 골랐더니 그분이 웃었다 한다. “욕심을 버린 것 같아 기쁘다”는 것이다



 정책도 경제도 물 같다고 생각한다. 물은 물길을 따라 간다. 앞에 방해물이 생기면 빙 둘러간다. 웅덩이가 생기면 한참을 꼼짝 않는다. 그러다 여울을 만나면 갑자기 치고 나간다. 제 모습을 바꾸되 길을 바꾸지 않는다. 정책도 그렇다. 정면 돌파라는 게 없다. 반대 여론을 만나면 둘러 가야 한다.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때를 만나면 순식간에 세상을 바꾼다.



 물처럼 살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 이 글을 남기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어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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