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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충칭과 보시라이

중앙일보 2012.03.22 09:17
충칭은 서쪽으로는 양즈강(長江)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자링장(嘉陵江)이 흐르는 가운데 반도가 뻗어 있는데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과 이스트 강 가운데의 만하탄처럼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19세기 상하이가 동양의 뉴욕이었다면 지금은 중칭이 그 이름을 물려 받고 있다.



충칭은 전략적 중요성에 의해 중일전쟁(1937-45) 당시는 국민당정부에 의해 임시수도가 되었다. 미국등 50개국의 대사관도 수도 난징에서 전시 수도 충칭으로 이전하였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이곳에 자리잡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공업은 충칭에서 배워라”할 정도로 충칭은 중국 유수의 공업도시이다. 충칭의 지정학적 위치로 국가의 심장 산업이 충칭에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1940년대 항일전쟁당시는 일본을 피해 난징(南京) 우한(武漢)의 공장을 충칭으로 이전하였고 1950년대 중소분쟁 당시는 上海와 동북지방의 공장을 이전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1980년대 개혁 개방으로 연안지역에 투자가 집중됨에 따라 충칭의 공업이 일시 쇠퇴하였지만 2000년대 시작된 서부대개발의 일환으로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공업이 발전하고 있다.



충칭은 수당(隋唐)대에는 자링장(嘉陵江)의 옛 이름 유수를 따서 유주라 불렀다가 송대에 와서는 이 지역에 자주 발생하는 반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공손의 의미로 공주(恭州)라고 불렀다. 남송(南宋)의 2대 황제(孝宗)는 자신의 셋째 아들을 이곳 공왕(恭王)으로 봉하였다. 그 후 효종이 황제의 자리를 공왕(恭王)에게 양위함에 따라 恭王은 남송의 3대 황제(光宗)가 된다. 공주(恭州)는 두번의 경사(double celebration)를 맞이하였다하여 쌍중희경(雙重喜慶)의 중경부(重慶府)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금년 가을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 다시 한번 경사가 날 뻔했다. 보시라이 당서기가 2007년말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하여 지난 4년여간 부패를 척결하는 등 파격적 정치 수완을 보여 금년 가을 중앙정치국상무위원으로 승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충칭은 보시라이 당서기에게 경사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측근의 비리에 연류되어 당서기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이다. 충칭에서는 당분간 경사가 일어 날 것 같지 않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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