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미애의 대치동 교육 통신] 우리아이 ‘강대’ 다녀요 … 재수생도 등급이 있는 대치동

중앙일보 2012.03.22 04:27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이미애
샤론 코칭 &멘토링 연구소 대표
“어머, 오랜만이에요. (눈치를 살피며) 아이가 고3 아니었나요?” “아? 네, 우리 아이는 ‘강대’에 다니고 있어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두 여인의 대화다. 자녀의 재수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사실 속은 쓰리겠지만 강남에서 수능 보는 학생의 절반이 재수생이니 그리 숨길 일은 아니다. 어쩌면 ‘강대(강남대성학원)’에 다닌다고 슬쩍 자랑을 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시 실적이 가장 좋은 곳이 강대라는 농담도 있고, 강대에 들어가면 밥 산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2012학년도 수능 응시생 중 재수생 비율은 20% 이하인데 강남 고교의 경우엔 평균 43.9%로 절반가량이 재수생이다. 이는 강남 학생들의 실력이 유독 낮아서가 아니라 목표 대학의 눈높이가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싶다. “서울대는 못 가더라도 연·고대는 가야지, 그래야 밥 먹고 살지.” “무조건 의대를 가라. 지방도 좋다.” “과는 상관없다. SKY 찍어라.” “부모보다 좋은 학교는 못 가더라도 비슷한 데는 가야지.” “재수해서 대학 바뀌면 백번이라도 시키겠다.”… 이렇듯 명문대에 대한 열망과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재수생을 양산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과연 왜 재수를 하는지 대치동 주변의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사례1 일반고 최상위권 이과 학생. 수시전형으로 지방 의대에 합격.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휴학. 서울권 의대에 다시 도전.(묻지마 의대 입학의 피해)



사례2 일반고 상위권 이과 학생. 꿈을 안고 명문대 공대에 진학. 1학년 다니다 진로가 걱정돼 부모의 권유에 따라 휴학계를 내고 의대에 도전.(이공계 기피 현상)



사례3 일반고 중위권 문과 학생. 본인의 실력에 맞는 대학은 부모님이 거부. 상향 지원 후 실패하고 재수. 재수에서도 같은 과정으로 또 실패. 다시 삼수. (무모한 도전의 결과)



사례4 외고 최상위권 문과. 연세대 합격. 입학 후 서울대에 다시 도전. (서울대 지상주의)



 강남 일반고에서만 재수생 비율이 높은 게 아니다. 특목고에서도 재수생 비율이 40% 가까이 되고 있다. 과연 그들은 본인의 미래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혹여 성공한 부모에 버금가기 위해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사실 대치동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모가 많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에 속하며 명문대 출신도 많다. 즉 본인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며,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공부 못하는 자녀는 이상하다. ‘공부가 뭐가 힘들어? 그냥 하면 될 텐데…’ ‘누굴 닮아서 저럴까?’ ‘나는 내 힘으로 공부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지원하잖아.’ ‘요즘 아이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설마 그래도 내 자식인데 연·고대는 가겠지. 아니, 못 가면 가게 만들어야지.’



 설령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다 느낀다.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부모의 모습은 거대한 산과 같다. 공부를 못해 죄송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잘난 부모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아빠는 서울대 출신인데 나는 ‘인서울’이라도 가능할까?’ ‘우리 아버지는 의사인데 나는 의대는커녕 4년제 대학도 힘드니…’ 잘난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 성공한 부모 앞에서 자꾸만 위축되고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이들. 일단 ‘재수’로 시간을 벌어본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게 자녀 양육의 기본 원칙 아니었던가. 부모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한 해 더 고달픈 수험생활을 하기로 한 아이들이 애처로워 보이는 요즘이다.



이미애 샤론 코칭 &멘토링 연구소 대표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