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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보고 싶어 오늘도 컴퓨터를 켭니다

중앙일보 2012.03.22 00:48 종합 8면 지면보기


천안함 유가족 가운데 폭침 2주기(3월 26일)가 특히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들은 시신을 찾지 못한 장병 6명의 가족이다.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박경수 상사, 장진선 중사, 강태민 상병, 정태준 일병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은 ‘산화자(散華者)’라고 불린다. 시신 대신 장병들이 입대 당시 해군에 냈던 머리카락이나 손톱, 옷가지 등 유품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시신도 못 찾은 미귀환 용사 6인 … 가족들이 말하는 천안함 그 후 2년



 고 장진선 중사의 아버지 장만수(54)씨는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와 백령도에 자주 간다고 했다. 장씨는 “다른 유족들은 현충원에 가지만 내가 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은 아들이 복무하던 2함대와 전사한 백령도 앞바다”라며 “그곳에 아들의 넋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유가족들과 만난다는 장씨는 “우리 아들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21일 경기도 김포시의 한 사무실에서 고(故) 강태민 상병의 아버지 강영식씨가 모니터 속의 강 상병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강씨는 가족들이 힘들어할까 봐 아들 사진과 유품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김도훈 기자]
 역시 산화자인 고 강태민 상병의 아버지 강영식(52)씨는 아들의 사진과 유품을 모두 태웠다. 아들이 남긴 편지만 평택 2함대에 보내 전시하도록 했다. 강씨는 “다른 유가족들은 시신을 태우며 아들을 떠나보냈지만 우리 아들은 찾지도 못해 사진과 유품을 태워야 했다”며 “유품을 남겨둘까 생각도 했지만 아내가 그걸 보고 계속 힘들어할까 봐 눈물을 흘리며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2009년 5월 해군 입대 당시 홍익대에 재학 중이던 고 강 상병은 지난달 22일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강씨가 졸업식에 아들 대신 참석해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누군가 태민이를 신경 써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고 말했다.



 공식 2주기 추모행사는 26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다. 유가족들은 하루 전인 25일 대전의 한 호텔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강씨는 “벌써 2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유가족들을 만나 손 붙잡고 얘기를 나누면 눈물이 많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 “음모론은 우리 아들 두 번 죽이는 일”=산화자 유족뿐 아니라 다른 유족들에게도 2년이란 세월은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고 조지훈 상병의 아버지 조영복(51)씨는 서울 금천구에서 대전현충원 인근으로 이사했다. 아들 곁에 있고 싶어 직장도 새로 구했다. 조씨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현충원에 꼭 들른다”며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은 그대로지만 묘역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고 나현민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54)씨는 “식탁에 앉으면 항상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방도 하나 비어 있다. 그것이 그렇게 공허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은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질 거라고 하지만 그 빈자리를 누가 알겠느냐”며 눈시울을 적셨다.



 천안함 46용사의 유족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이 북한 어뢰에 의한 폭발이 아니다’는 음모론에 대해 묻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지훈 상병의 아버지 조씨는 “아무리 직접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생각을 해 가며 조심스럽게 말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진선 중사의 아버지 장씨도 “(음모론자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는 것이냐”며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하선영·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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