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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팔다리 없는 차장님’을 사랑하는 회사

중앙일보 2012.03.22 00:00 종합 36면 지면보기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손가락 하나로 일하는 차장님’(본지 3월 15일자 26면) 이홍승(38)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였다. ‘귀감이 되는 환자’라며 병원 쪽에서 그를 소개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팔다리를 잃었다. 두 다리와 오른팔, 왼쪽 손가락 4개를 한 번에 잘라내는 대수술이었다. 6개월 전만 해도 아침마다 두 아이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외국계 회사 차장님이었다.



 그는 의수나 의족을 착용하지 않은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을 지탱해준 신앙, 연말 성과급을 모아 보내준 닐슨코리아 동료들, 병실을 찾아 "꼭 복귀하라”고 말했다는 신은희 대표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사할 것이 참 많다”고 했다. 그가 손가락 하나만 남은 뭉툭한 왼손으로 노트북 자판을 클릭해 만든 자신의 재활 동영상을 보여줬을 때는 눈물이 나왔다.



 이후로도 그의 안부가 종종 궁금했다. ‘돌아오라 했다’던 직장에는 과연 돌아갔을까. 가족들과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지만 선뜻 걸 수가 없었다. 팔다리를 잃은 가장이 품은 ‘희망’을 한국 사회가 과연 받아주었을지,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직장 복귀 소식을 들었다. ‘이홍승씨라는 분이 근무하는지’ 닐슨코리아에 확인부터 하고 그에게 연락했다. 9개월간의 유급휴직을 마치고 연구개발팀장으로 복직했다는 그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진동휠체어를 타고, 의수에 볼펜을 끼워 타이핑을 하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상생, 기부가 화두가 된 시대다. ‘내 것만 챙기는 회사’로 찍히지 않으려고, 기업들은 저마다 사회공헌활동을 고심한다. 각종 이벤트도 벌인다. 사장과 임원진이 팔을 걷어붙이고 김치를 담그고, 겨울이면 판자촌으로 연탄을 나른다.



 하지만 일터의 상황은 어떤가. 건강, 출산,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여전히 주위에 가득하다. 조금만 배려하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이 개인 형편까지 생각하기 힘든 기업의 생리 때문에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밖에서 연탄 나르는 것도 좋지만, 회사 안 직원들의 애로사항부터 챙겨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상생 이벤트’를 고민하는 사장님들께 신은희 대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홍승씨는 우리 회사에 실적 이상의 가치를 주었습니다. 그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을 사랑하는 것을 다른 직원들이 직접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만큼 값진 기여가 있을까요.”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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