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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명품에 미친 사회…혀 찰 일이지만 누군가엔 존재의 몸부림

중앙일보 2012.03.22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패션잡지에서 쏙 빠져 나온 듯한 백인 선남선녀와 며칠 전 차 한잔을 나눴다. 둘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 A사의 아시아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모두 애가 달아 있었다. 한국 명품 시장이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A사는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하다는 거였다. 이들은 대놓고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샤넬·에르메스·루이뷔통 수준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내 입에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혼수 목록에 올라야죠.”



 고가의 해외 브랜드 제품들이 기본 혼수 품목으로 자리 잡은 건 2, 3년 새 일이다. ‘남시여백’. ‘남자는 시계, 여자는 핸드백’이란 뜻인데 그 값이 싼 건 수백만원, 비싼 것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덕분에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국내 백화점업계의 명품 매출은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2009년 16%, 2010년 12%, 지난해엔 무려 20%였다(지식경제부).



 A사 사람들은 우리도 그 정도는 안다며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필수 혼수품이 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낸들 알겠는가. 다만 그 얼마 전 모 백화점이 내놓은 자료가 답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른바 ‘연예인이 많이 찾는 브랜드 베스트3’이다. 1위 샤넬, 2위 에르메스, 3위 루이뷔통. 매일 수백만 명이 클릭하는 포털 사진 뉴스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뭘까. 연예인 직찍(직접 촬영), 연예인 공항 패션이다. 드라마·오락 프로그램에 협찬받아 걸치고 나오는 것까지 합쳐, 패션업계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좋은 쪽이든 그 반대로든 유명인에 대한 몰입과 집착이 유난한 사회 아닌가.



 A사 남녀는 이어 “한국에선 고가 마케팅이 유난히 잘 먹히는 것 같다”고 투덜댔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올 1, 2월 샤넬과 에르메스, 프라다는 평균가를 5~10%씩 올렸다. 손님은 외려 늘었다. 프라다의 경우 판매원들이 가격 인상 소문을 미리 퍼뜨린 덕에 전 달 매출이 30%나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래도 벌고 저래도 버는 셈이다.



 명품 소비의 심리학적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게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이다. 생존욕부터 자아실현욕에 이르는 인간의 여러 욕망 중 ‘자기존경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명품 열풍이 유난한 건, 그렇다면 존경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그만큼 막혀 있다는 뜻 아닐까. 큰 차를 타야, 비싼 핸드백을 들어야 비로소 대접받는 사회.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소위 지식인이나 타고나길 복 받은 이들이 ‘명품이나 밝히는 천박한 짓’을 내놓고 조소하는 것 또한 일종의 선민의식의 발로(發露)일 수 있겠다. 학력이나 재력, 외모며 사회적 지위로 자기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가 된다면 지금 같은 이상 열풍은 절로 사라지지 않을지.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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