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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

중앙선데이 2012.03.18 03:52 262호 39면 지면보기
사진의 속성 중에 우선 따져야 할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둔 기록성’입니다.
기록성은 곧 ‘현장성’입니다. 어디든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그런 뜻을 갖고 봄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 다른 어느 곳보다 으뜸으로 바람 부는 강가로 나섰습니다.
꽃샘바람이 어지간한 태풍보다 더 셉니다. 몸을 가누질 못할 정도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삐뚤빼뚤 다녔습니다.
봄바람을 제대로 맞았습니다. 강물도 바람에 떠밀려 정신 없이 휘돌아 흘렀습니다.
거센 바람이 만들어 낸 파도의 끝자락은 끝내 허연 물보라가 되어 하늘로 솟구쳐 날아갑니다.
‘멀쩡한 하늘에 비바람’이었습니다. 더는 못 참고 돌아섰습니다.
무지막지한 강바람에 휘둘리는 대나무에 뒤통수 맞아가며 종종걸음으로 강가에서 도망쳤습니다.
강바람 겨우 면한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불현듯 ‘그 겨울의 주막집’이 떠올랐습니다.
장작난로 옆에 끼고, 뜨끈한 어묵 국물 훌훌 불어가며, 막걸리 주고받던 지난 겨울밤의 따뜻함이 간절해졌습니다.
근처 마을에 ‘오디막걸리’를 잘 담근,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그 여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봄바람이 났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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