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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 ‘르네쌍스’ 시절로 날 돌리도!

중앙선데이 2012.03.18 02:06 262호 31면 지면보기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명반이 많지만 전성기의 정경화와 ‘은둔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라두 루푸의 데카 음반도 빼어나다. 젊은 시절 정경화는 귀기에 가까운 정열을 내뿜었다. 라두 루푸는 최근 서울시향과 협연하기로 했으나 건강 문제로 무산됐다.
늙으면 낡아진다는데, 낡으면 추억에 사로잡힌다는데, 낡은 추억은 자기 연민을 불러일으킨다는데…. 나는 이 늙고 낡은 과거 집착, 자기연민의 추억들이 싫지가 않다. 추억은 뭐랄까. 다큐멘터리 장르라기보다는 창작의 세계에 가깝다. 동창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기에 벌어진 옛 일인데 제각각 딴소리를 한다. 아예 여러 가지 딴소리들이 변신 합체하여 멋지거나 매우 우스꽝스러운 서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허구일까.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서사가 완결되지 않은 현재의 순간순간들이 더 허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기억의 선택작용에 의해 명료한 반면 현재의 나날은 도대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詩人의 음악 읽기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내 추억의 한 원점에 음악감상실 르네쌍스와 이성삼의 클래식 명곡대사전이 있다. 많은 음악들, 많은 만남들이 거기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문예반에 들어갔는데 비쩍 마른 몸에 도대체 체중을 싣고 다니지 않는 듯이 늘 흐느적거리는 선배가 있었다. 별명이 거북이었다. 그 형이 클래식 광이었고 무교동 르네쌍스의 폐인이었다. 놀랍게도 당시엔 학교 밖을 나가는 외출증을 문예반장이 스스로 끊었다. 학교 신문과 교지를 만드는 귀하신 몸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중에도 거북이 형과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교문을 나섰다. 르네쌍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행차다. 우리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시인은 막 살다가 파멸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므로. 그리고 빨리 죽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머지 않아 폐결핵에 걸리거나 외딴 곳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멋진 미래로 상상하고는 했다.

르네쌍스의 깊숙한 의자에 앉아 ‘앗흐, 죽음의 칼바람’ 어쩌고 하는 구절을 끄적이던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솜털도 보송보송했을 그 귀에 충격, 전율, 쾌락, 탐미, 슬픔, 허무로 다가온 음악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마 그때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 곡을 찬찬히 떠올리면 100곡이라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솜에 물이 젖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때 어떤 계기로 이성삼의 클래식 명곡대사전을 사게 됐다(틀림없이 참고서 값을 횡령했을 것이다). 막연했던 선율이 해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라니! 흔히 하는 말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만점을 받았을 터이다. 이성삼 사전은 내 클래식 지식의 원점이 되었던 책이다. 책에 담긴 모든 곡을 다 듣겠다고 엄청난 분량의 신청곡을 써내서 플레이어(DJ를 르네쌍스에서는 그렇게 불렀다)를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무작위로 들려오는 음악 속에서 강렬하게 귀를 잡아당기는 세 명의 작곡가가 있었다. 세자르 프랑크(작은 사진)와 에두아르드 랄로 그리고 앙리 비외탕. 해설서를 읽고 있는 소년에게 일단 작곡가의 존재감이 멋져야 했다. 그런 면에서 프랑크와 랄로의 생애와 음악적 행보가 매우 대조적이었다. 한마디로 경건한 프랑크와 화사한 랄로.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프랑크는 시류를 거부한 음악가였다.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생을 보내며 69세에 이르러서야 작곡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날라리 오페렛타에 당시 청중이 열광하고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는 세태 앞에서 프랑크는 독일 고전, 낭만주의 계통의 순음악주의를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고전주의의 지적 구성력과 프랑스적 감성을 잘 결합시킨 사례로도 설명된다. 그리고 그 정점으로 다가오는 곡이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프랑크의 단 한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인 A 장조곡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시작부에서 수줍고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대목이 2악장에서는 폭풍으로, 이어 3악장, 4악장에 다다르면 자유연상의 환상풍으로 펼쳐지다가 장중하게 끝맺는다. 세상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베토벤과 브람스 곡을 자기 기량의 최고치를 검증하는 목표로 삼는데 프랑크의 이 곡도 그 대열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연주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좋은 연주의 사례로 라두 루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정경화 음반을 들 수 있다. 정경화의 모든 음반을 통틀어 외모가 가장 아름답게 등장하는 음반이기도 하다(큰 사진). 정경화의 프랑크는 격정과 섬약함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가는데 그게 바로 정경화 아니던가. 내가 갖고 있는 재주가 하나 있다. 연주가 최절정인 아주 적절한 순간에 ‘히야’ 하는 감탄사를 낸다고 누가 알려줬다. 그 오래전 르네쌍스에서 처음 프랑크를 듣던 때 어느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히야’ 했나 보다. 옆자리 털북숭이 아저씨가 ‘너 음악 좀 듣네’하며 웃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누구의 연주였을까. 그 털북숭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 그립다. 돌리도 돌리도 돌리도! 무릎에 이성삼을 펼쳐놓고 프랑크 바이올린 소리를 탐하며 언젠가 동해안 절벽 바위 아래로 영영 사라지려 했던 소년의 환상을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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