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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과 6년 투쟁, 메릴린 먼로와 5년 살림

중앙선데이 2012.03.18 02:03 262호 32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한 여성단체 모임에서 “내 손엔 미국 국무부와 정부에 침투한 205명의 좌익분자 명단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른바 ‘매카시 파동’의 시발점이다. 이후 4년간 미국 사회는 용공분자 색출 광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때마침 소련 스탈린의 동유럽권 위성국화, 중국 공산정권 수립, 한국전쟁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 핵 간첩사건 등으로 이 반공 열풍은 공산주의의 미국 내 확산을 우려한 많은 미국인의 호응을 얻었다. 의회엔 반(反)미국적 행위를 규명하는 청문회가 열려 적지 않은 미국 진보 성향 지식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세일즈맨의 죽음’ 쓴 아서 밀러

레이건·디즈니도 매카시 광풍 가세
주동자로는 매카시를 비롯해 훗날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상원의원 배리 골트워터, 연방수사국(FBI) 국장 에드거 후버, 디즈니 영화사 설립자 월트 디즈니와 영화 감독 엘리아 카잔 등이 있었다. 피해자로는 원자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 영화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 문인 릴리언 헬먼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유대인이다. 당시 많은 유대 지식인들은 진보 성향을 보였다. 요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극작가 아서 밀러(사진)도 이 ‘마녀 사냥’에 시달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밀러는 1915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폴란드 태생 유대인이다. 아버지가 여성복 봉제공장을 운영해 유복하게 자랐다. 그런데 30년대 초 불어닥친 대공황 영향으로 아버지의 사업체는 도산했다. 밀러는 고교시절 빵 배달을 했다. 미시간 주립대학에 들어가 언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했다. 미국 공산당에도 입당했다. 그러다 미시간 데일리라는 지방 신문의 편집 보조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배웠다. 38년엔 영화사 20세기 폭스사의 스크립터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희곡 작가로서 평판을 얻은 그는 CBS 라디오 방송의 드라마 작가로 옮긴다.

밀러는 52년 매카시 파동의 일환으로 미국 의회에 설치된 ‘비(非)미국적 행위 조사위원회’에 불려가 신문을 받았다. 공산당원 전력이 문제가 됐다. 그는 미국 문화계서 활동 중인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명단을 내놓으라는 위원회 측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반대로 밀러와 절친했던 영화 감독 엘리아 카잔(‘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 감독)은 문화·예술계에 포진한 150여 명의 좌익인사 명단을 위원회에 넘겼다. 이 시기부터 밀러는 카잔과 절교했다. 훗날 밀러와 결혼하는 당대 인기 여배우 메릴린 먼로는 살벌한 분위기의 청문회 내내 밀러와 시간을 같이하면서 그를 성원했다. 57년 밀러는 30일 구금과 5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여권도 몰수됐다. 58년이 돼서야 무죄가 확정되고 복권됐다.

밀러는 56년 첫 부인과 이혼하고 51년부터 내연관계였던 여배우 메릴린 먼로와 재혼했다. 모두들 일견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좌파 지성인과 백치미인의 이 결합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남녀관계는 묘하다. 밀러는 인기 절정의 여배우인 먼로가 도도하지 않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끌렸다. 먼로는 지성미 없는 섹스 심벌이란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완해줄 동반자가 필요했다. 먼로는 결혼하면서 아예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다. 그래서 미국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은 먼로를 유대인으로 간주한다. 이 결혼은 그래도 5년이나 지속됐다. 그리고 먼로는 61년 밀러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야생마(The Misfits)’에도 출연했다. 밀러는 뉴욕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코네티컷주 록스베리서 한 여류 사진작가와 동거하며 말년을 보내다 2005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밀러는 평생 72편의 희곡·시나리오·수필·소설·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썼다. 그중 ‘모두 나의 아들들’(47), ‘세일즈맨의 죽음’(47), ‘시련’(53), ‘다리에서의 조망’(53), ‘몰락 이후’(64), ‘대가(代價)’(68) 등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20세기 미국의 3대 극작가로 꼽혀
밀러는 그의 작품에 고대 그리스 문학의 전통 그리고 사회주의적 관찰을 많이 투영시켰다. 소시민과 사회의 갈등 관계를 그렸다. 한 작품에 다양한 모티브를 설정해 인간의 다면성을 파헤쳤다. 유대인의 장기인 상상력을 동원한 플래시백(과거 회상) 기법도 즐겼다. 물신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시달리는 소외계층의 울분과 또 그들의 존엄성을 부각시켰다. ‘세일즈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윌리 로만을 통해 난공불락의 기득권 사회에서 비약을 꿈꾼 한 계급 낙오자의 좌절을 그렸다. 이 작품은 49년 2월 뉴욕 모로스코 극장서 엘리아 카잔의 연출로 초연됐다. 유대인 배우 리 제이 코브가 주인공 로만 역을 맡았다. 매카시 파동서 당한 울분도 작품으로 남겼다. 53년에 발표한 ‘시련’이다. 1692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서 12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교수형에 처한 실화를 주제로 했다. ‘시련’은 96년 영화화됐다. 밀러의 사위인 영국 유대인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역시 미국 유대인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각각 주연을 맡았다.

밀러는 유진 오닐, 테너시 윌리엄스와 함께 20세기 미국 3대 극작가로 손꼽힌다. 대공황의 여파로 어린 시절 집안의 몰락과 가난, 매카시 파동으로 인한 사상적 박해 그리고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동거 생활 등 평생 굴곡진 삶을 산 밀러의 일생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동과 교훈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는 대문호는 모름지기 밀러와 같이 평탄한 삶 대신 좌절과 시련을 겪은 인물 중에서 길러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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