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 LIFE] 퍼스널 헤리티지 ‘스타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중앙일보 2012.03.15 05:0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하면 값비싼 명품만 좋아할 것 같지만 사진 속 옷과 액세서리들은 모두 1만~3만원대의 것들이다. 그는 “스타일에서 중요한 건 ‘브랜드’가 아니라 ‘나만의 개성’”이라고 말했다.
서은영(44)은 ‘스타’ 스타일리스트다. 톱스타 고현정·전지현·김아중·정우성 등의 드라마·광고 속 의상을 맡았고, 2002년 대선 땐 정몽준 의원(대선 포스터 작업)의 스타일을 책임졌다. 또 김연아의 ‘맥심 커피’와 ‘퓨어’ 광고, ‘도가니’ ‘오직 그대만’ ‘푸른 소금’ 등의 영화 포스터도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이렇게 바쁘게 일했던 그가 2010년부터 1년 남짓 세계여행도 했다. 그리고 『서은영의 세상견문록』이라는 책까지 냈다.


아흔에도 ‘패션 TPO’ 실천하신 할아버지 감각 물려받아

 “돈이 떨어지면 서울로 돌아와 일을 했고, 여비가 모이면 다시 떠났죠. 지중해로, 일본으로, 인도로, 북유럽으로, 로키 산맥으로, 동유럽으로 ‘사방팔방 바람난 강아지’처럼 무작정 돌아다녔어요.”



 재무회계사는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안달했고 지인들은 “한창 일할 때 웬 미친 짓”이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은영의 대답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는 언제나 말씀하셨어요. 지금 네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좇아가라,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말고 표현하라고.”



나를 키운 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는 힘



어머니가 물려주신 진주 팔찌에 은색 리본을 달아 색다른 분위기를 냈다(왼쪽). 서은영은 겨울이면 크고 작은 브로치를 코트·재킷 등에 달아 멋내기를 좋아한다(오른쪽).
서은영의 경력은 좀 복잡하다. 패션전문학교 일본 도쿄모드를 졸업하고 미국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마케팅 단기과정을 수료한 후 패션 디자이너로 또 패션지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스타일링과 브랜드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는 ‘아장드 베티’의 대표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봉이 깎이면서 감행한 이직,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 선택. 남들은 모두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서은영의 생각은 달랐다.



 “정말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었고 그 무모한 열정 덕분에 남들이 가지 않았던 블루오션을 선점할 수 있었죠. 전 ‘경쟁’이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해요.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요. 그런데 경쟁을 피하려면 남들과 ‘달라야’ 해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나를 쫓아오게 만드는 방법. 그것은 남다른 상상력과 표현력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 그 미래를 현실로 끌어내는 힘. 서은영은 “그 방법 역시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어려선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제가 고도의 ‘감각 트레이닝’을 받으며 자랐더라고요.”(웃음)



늘 새로운 패션 도전한 TBC 탤런트 출신 어머니



다양한 색상의 물방울 무늬 셔츠와 사각 선글라스로 멋을 낸 어머니의 30대 모습.
TBC 1기 공채 탤런트였던 어머니 이영림(76)씨는 예나 지금이나 멀리서도 눈에 확 띌 만큼 화려한 사람이다. 서은영은 “삼촌이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며 어머니를 한 달 동안 집에 가두는 바람에 결국 탤런트 활동은 못했지만 젊은 시절 사진 속 어머니는 외국의 유명 배우나 모델처럼 옷차림이 세련됐고 또 과감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서은영은 콤 데 가르송의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가 즐겨 사용하는 물방울 무늬의 매력을 일찌감치 어머니의 옷차림을 통해 터득했다.



 “어머니는 명품도 좋아했지만 시장 물건도 자주 사셨죠. 어머니에게 중요한 건 ‘비싼 것’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예쁜 것’이었으니까요. 생각 속의 예쁜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재능도 뛰어나셨어요. 샤넬 검정 구두에 검정 리본이 달려 있다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산 검정 구두에 흰 리본을 달았죠. 지난 3월 1일에 있었던 여동생의 결혼식에서도 어머니의 옷차림이 화제가 됐어요. 자수집에 가서 흰 매듭실을 구해 무릎까지 길게 내려오는 노리개를 만들어 다셨거든요. 손바닥보다 큰 나비 모양의 목걸이 펜던트로 노리개를 장식했는데, 다들 어디서 산 건지 물어봤죠.”



 액세서리, 특히 진주를 좋아했던 어머니는 몇 해 전 세 딸 중 맏이인 서은영에게 진주 목걸이와 팔찌를 물려줬다. 당시 서은영은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려봤다. “엄마도 에르메스 버킨 백 하나 사지. 그것도 물려줬으면 얼마나 좋아.”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단다. “젊은 애가, 넌 그게 예쁘니? 난 아니다.”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앞선 패션 감각을 지닌 어머니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에게 비판을 서슴지 않는 매서운 스승이다.



중·고생 땐 책 속 인물에 맞는 옷 상상 하며 놀아



사진 속 어머니의 진주 목걸이는 이제 서은영의 소중한 보물이 됐다.
대구에서 원단 사업을 하셨던 할아버지(고 서한풍씨. 2011년 작고)는 그 시절에 보기 드문 멋쟁이였다. 서은영이 크리스찬 디올이나 이브생로랑의 옷을 초등학교 때 처음 접했던 것은 할아버지 덕분이다. 일본 기모노 원단 수출로 일본 여행이 잦았던 할아버지는 유가타(일본 목욕 가운)도 종종 입었다. 그때도 같은 색 띠 대신 오렌지색 넥타이를 묶어 멋을 냈다.



 “4년 전 할아버지와 일본 온천 여행을 갔어요. 3박4일 일정이었는데 당시 90세였던 할아버지의 트렁크는 이민가방만 했죠. 어떤 장소를 가고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의상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할아버지의 평소 주장이었으니까요.”



 할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던 아버지 서영근(2003년 작고)씨는 감성적인 성격이었다. 서은영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반항기 많았던 중·고교 시절, 난 공부는 못했어요. 대신 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봤죠. 그때의 간접경험들이 내 일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우리가 돈이 아무리 많다 한들 영국의 에드워디안 시대(영국 에드워드 7세의 재위 기간인 1901~1910년 전후 시기)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신라 선덕여왕 시대로 여행할 수는 없잖아요. 책을 읽으면서 인물의 캐릭터와 맞는 의상을 상상하는 건 중·고교 시절 제가 즐겼던 놀이였어요.”



 서은영은 요즘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다시 읽고 있다. 추리물은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모여 사건을 일으키는 장르다. 그 반대편에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의상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요.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현재 입고 있는 의상 묘사를 섬세하게 하는 것도 특징이죠. 요즘은 단추가 두 줄로 있어 앞 섶을 좌우로 여밀 수 있는 피코트, V자 모양의 무늬로 짜여진 헤링본 바지 등 고전적인 옷과 액세서리들이 어떤 이미지를 대변하는지 공부하고 있어요.”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