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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BEST] 위대한 식재료 … 예산 가나안농장 유기농 돼지고기

중앙일보 2012.03.15 05:00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이 난을 쓰느라 취재를 다녀 보니 건강한 식재료를 양심적으로 생산하면서도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언론사 취재를 마뜩잖아 한다는 것이다. 감출 것이 많거나 취재가 지겨워져서 그런 게 아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홍보야말로 사업의 핵심이라 주장하는 이 시대에 중앙 일간지에서 전면을 할애해 다루겠다는 데도 마다하다니, 이런 사람들은 돈벌이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좋은 물건 만드는 것에 꽂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직거래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질수록 일반적인 시장거래 논리에 말려들어 직거래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시장 만능의 시대에 참 이상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농약·항생제 없는 청정고기 … 불포화지방산 많아 굳기름 적어

가나안농장의 이연원 대표가 우리에서 돼지들을 돌보고 있다. 돼지들은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강아지처럼 따라다닌다. 돼지우리에는 톱밥을 두껍게 깔아 발굽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도록 했다. 톱밥과 섞인 유기농돼지의 똥은 자연발효되어, 고스란히 예산 지역 유기농 작물의 비료로 쓰인다.


 그런데 유기농 돼지고기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나안농장의 이연원(47) 대표는 한술 더 떴다. ‘이연원유기농돼지’라는 이름을 건 브랜드로 생산되는 고기가 그리 좋은 식재료가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취재진 앞에서 단지 ‘조금 덜 나쁠 뿐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아주 정말 진짜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연원유기농돼지’ 삼겹살. 겉보기에는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구워 먹어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돼지 냄새가 거의 나지않고, 접시에 묻은 기름은 식어도 굳지 않는다.
‘이연원유기농돼지’는 우리나라 친환경 돼지고기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돼지고기가 뭐 그리 다를까 싶지만, 대형 마트에 가보면 돼지고기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브랜드 없이 판매되는 일반 돼지고기와 ‘도드람포크’ ‘한라산그린포크’ 등 브랜드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돼지고기로 나뉜다. 당연히 브랜드 이름을 붙인 돼지고기는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내세우는 것인 만큼 값도 그만큼 비싸다. 브랜드 돼지고기를 살펴보면 보성녹돈의 ‘녹차먹이돼지’처럼 특별한 사료를 먹여 지방을 줄이고 고기의 질을 높였다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사료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들은 모두 ‘친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는 ‘관행농’(여태껏 해왔던 방식으로 키웠다는 의미다) 범주의 돼지고기다.



‘친환경’이란 말이 붙으려면 일단 ‘무항생제’ 등급 이상은 돼야 한다. 여기에서부터는 공식적인 인증절차가 있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으려면 마리당 차지하는 돈사의 넓이를 지켜야 하고, 항생제를 섞지 않은 사료를 먹여야 한다. 그 말은 무항생제 인증이 없는 돼지고기는 돼지를 작은 우리(케이지·cage)에 가두어 키우면서 항생제 섞은 사료를 먹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작은 틀 안에 가두어진 돼지는 평생 일어섰다 앉았다만 할 수 있을 뿐,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니 당연히 병에 약할 수밖에 없고, 병을 막기 위해 사료에 아예 항생제를 섞어 먹인다. 그에 비해 무항생제 등급은 돼지를 좀 넓은 공간에서 풀어놓고 키워야 하고, 사료에 항생제를 섞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병이 들어 항생제를 투여한 경우에도 일일이 검진 기록을 남겨야 하는 등 인증 기준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유기농’ 등급이다. 사육 환경과 사료 등에서 ‘무항생제’ 등급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특히 유기농 사료를 쓰는 것이 핵심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키운 식물이어야 하고, 당연히 값싼 유전자조작식품(GMO)도 배제된다. 이 유기농 사료는 수입가격이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생선가루나 분유 같은 동물성 단백질이 섞여 있지 않아 돼지가 빨리 크지 않는다. 무항생제 돼지보다 한 달을 더 키워야 하니 생산비가 훨씬 많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무항생제 사육농은 500곳 이상이지만 유기농 인증을 받은 곳은 네 곳에 불과하다.



새끼돼지를 안고 있는 이연원 대표. 뽀얀 살결의 새끼돼지들은 애완동물로 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예쁘다.
‘이연원유기농돼지’를 생산하는 가나안농장은 이 까다로운 유기농 인증을 받은, 매우 드문 업체인 셈이다. 실제 찾아가 본 가나안농장에는 돼지들이 톱밥 깔린 넓은 돈사에 풀어 키워지고 있었다. 임신한 돼지들은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어져 잠을 자고 있었지만, 아직 귀여운 티가 남은 어린 돼지들은 돈사 안에서 껑충거리고 뛰면서 살고 있었다. 돈사 안은 아무래도 돼지 냄새가 났지만, 정작 깔아놓은 톱밥은 똥과 뒤섞였음에도 잘 발효돼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것은 고스란히 유기농 쌀과 밀 재배 때 비료로 쓰인다.



이런 돼지고기의 맛은 어떨까. 막상 농장에서는 돼지고기를 맛볼 수 없었다. 그곳은 키우는 곳일 뿐, 도축과 유통은 씨알살림축산이라는 친환경 고기 전문 업체에서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이연원유기농돼지를 파는 매장은 연희동·신길동 사러가쇼핑센터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등 단 여섯 곳뿐이다. 생산물량이 한정적이고 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삼겹살 100g당 3000~5000원 수준이라니(가격이 다른 것은 판매점의 차이일 뿐, 질의 차이는 아니란다), 금테 둘렀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값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비싼 돼지고기를 사다가 당장 먹어보았다. 확실히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돼지 냄새가 적고, 식감이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다. 그러나 고기란 건 다 웬만큼 맛있는 법이다. 일반 돼지고기도 ‘금겹살’인 요즘, 돈이 없어 못 먹지 맛이 없어 못 먹는다는 사람이 몇 되겠는가.



생후 1주일 된 돼지들이 어미의 젖을 빨고 있다. 아무리 유기농 방식의 사육을 하더라도, 수유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어미돼지를 좁은 틀 안에 가둘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끼들이 어미돼지 밑에 깔려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비자에게 핵심적인 문제는 맛이 아니라 건강일 수 있다. 이연원 대표의 말에 의하면 유기농 돼지고기는 지방 중 불포화지방산의 비율이 현격하게 높단다. 쉽게 말해 다른 고기에 비해 굳기름이 적으니 혈관 등 몸에 주는 부담이 덜하다는 뜻이다. 육안으로는 그게 그것처럼 보이는데 엄청나게 비싼 이 고기가 매장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도 이 고기와 다른 고기의 기름을 상온에 놓고 굳는 정도를 소비자들에게 눈으로 확인시켜 주면서부터였단다. 농약이니 항생제니 하는 것은 제쳐놓고 그저 이것만으로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연원 대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유기농이라 해봤자 풀 사료가 아닌 곡물 사료로 키우는 고기이니 여전히 불건강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풀(섬유소 많은)을 적게 먹고 곡물이나 고기·기름을 많이 먹어 몸 안 지방산의 오메가3와 오메가6의 적절한 비율이 깨져 있단다. 곡물을 먹고 자란 고기엔 오메가6가 지나치게 많다고 한다. 쓸데없이 많은 오메가6가 인체를 병들게 하는데, 풀을 먹여 키운 가축의 고기라야 이 균형을 정상으로 유지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돼지가 먹는 곡물 사료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곡물을 수입해 먹으니, 산소 발생은 못한 채 이산화탄소만 열심히 방출하는 셈이다. 이러니 이 땅에서 축산을 한다는 것은 사람에게나 자연에나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그의 고민이었다.



임신한 돼지들의 우리. 돼지 귀에는 칩이 부착되어 있고 기계를 통해 돼지별로 사료를 급식한다. 돼지마다 하루에 먹는 사료의 양이 기계장치를 통해 정확히 기록되어, 과식이나 굶주림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요즘 풀, 콩깍지 등의 섬유소를 발효시킨 돼지 사료를 만드는 것에 전력하고 있다. 우리 땅의 섬유소 많은 식물을 돼지가 소화하기 쉽도록 발효시켜 먹이면 훨씬 더 사람에게 건강한 고기가 생산되고 가격도 싸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지금처럼 수입 곡물 사료로 축산을 계속한다는 것은 나라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이란다. 2015년까지 이걸 성공시키지 못하면 축산 일을 접겠다고까지 말했다.



 이러니 시장 논리로 보자면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닌가. 유기농 돼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그에게 이제 본격적인 기업화의 길로 들어서라며 투자를 하겠다는 제안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도리질친다. 기계를 사들여 실험하고, 농촌진흥청 연구자와 대학교수들을 만나 섬유소 발효 이야기를 하느라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 그러니 좋은 식재료란 확실히 자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책임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



1961년 서울 신설동 한옥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 개성 출신 할머니와 전북 출신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을 먹으며 ‘절대 미각’이 개발됐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대중문화평론가로, 음식에 대한 ‘평론’은 중간중간 취미 생활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등이 그의 직업 관련 저서. 또 2006년 음식에세이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를 펴냈으며, 2010년 3월부터 1년 동안 중앙SUNDAY에 칼럼 ‘제철 밥상 차리기’를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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