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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할머니·엄마·딸 … 미쏘니 이끄는 세 명의 미쏘니

중앙일보 2012.03.15 05:00 주말섹션 1면 지면보기
미쏘니 모녀 3대. 할머니 로지타(가운데)와 엄마 안젤라(오른쪽), 그리고 딸 마르게리타.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는 3대 모녀가 함께 만드는 브랜드다. 지그재그 무늬, 현란한 색상의 니트 의류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다. 미쏘니의 그 독특한 색깔 뒤에는 창의적인 여성 파워가 숨어 있다. 엄마 미쏘니가 세운 회사에서 딸 미쏘니가 디자인을 하고 있고, 그 딸의 딸은 모델 겸 디자이너로 가업을 잇고 있다. 미쏘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라 미쏘니(54)를 만나 이들 모녀 3대의 삶과 패션 이야기를 들었다.


80세 어머니·29세 딸과 미쏘니 디자인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라 미쏘니
더 섹시해진 지그재그 니트…가슴라인·엉덩이시접까지 여성 손길 담겼죠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훌륭한 엄마가 인생의 목표였다”고 말하는 패션 디자이너 안젤라 미쏘니(54)는 친절했다. 인터뷰 도중 마시라고 내온 커피가 식을까 “천천히 마셔가며 하라”고 했고, 인터뷰를 마치고선 “나도 한숨 돌려야겠다”며 “같이 바깥 바람을 쐬자”는 핑계로 문 밖까지 나와 볼에 입맞춤을 하는 서양식 예법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근한 인상, 자상한 성격의 평범한 50대 여성처럼 보이지만 그는 현대 이탈리아 패션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니트웨어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그의 어머니 로지타(80)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은 안젤라는 현재 미쏘니에서 액세서리 총괄 디자이너로 일하는 큰딸 마르게리타(29)를 두고 “몇 년 뒤에 내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털어놨다. 그가 들려준 ‘3대 모녀 패션 디자이너 이야기’는 이랬다.



밀라노=강승민 기자



미쏘니의 올 봄·여름용 의상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라 미쏘니가 집시 여인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화려한 무늬와 장신구를 조화시켜 집시 분위기를 더했다. [미쏘니 제공]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는 1953년 안젤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만든 브랜드다. 어머니 로지타는 여성들이 어깨에 걸치는 숄을 만들던 집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오타비오는 명망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육상선수로 활동했다. 오타비오는 결혼 전 친구와 함께 트랙슈트(육상선수들이 짧은 경기복 위에 덧입는 얇은 외투와 바지를 일컫는 말) 회사를 세워 운영하기도 했다. 안젤라는 오타비오·로지타 부부의 2남1녀 중 막내딸이다. 안젤라의 두 오빠, 비토리오와 루카는 현재 미쏘니의 경영 부문을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겠네요.



“물론이죠. 우리 공장과 집이 있는 곳이 시골(이탈리아 북부 수미라고)이었는데 전 거기서도 늘 하이힐을 신고 다녔으니까요. 요즘이야 (나이가 들어) 좀 낮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하이힐을 즐겨 신죠. 패션엔 아주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어머니 뒤를 이어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겠네요.



“아뇨. 처음엔 그저 용돈벌이로 회사에 들락거렸어요. 매장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 정도였죠. 그러다 나중엔 회사 일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얘긴가요.



“부모님이 회사를 함께 세우긴 했지만 그래도 두 분은 달랐어요. 아버지는 약간 철학자같이 생각이 많고 뒤로 물러나 있는 성격이셨죠. 하지만 어머니는 안 그랬어요. 뭐랄까. 늘 뭔가 해내야만 하는 사람(a builder)이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했죠. ‘회사를 떠나서 다른 걸 해보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시더군요. 글쎄, 패션 말고 인테리어 같은 것도 좋고, 아무튼 엄마와 같이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안젤라는 82년 스물넷의 나이에 마르코 마카파니와 결혼해 첫째 딸 마르게리타, 둘째인 아들 프란체스코, 셋째인 딸 테레자를 낳았다. 결혼생활은 7년 만에 끝났다. 이후 안젤라는 원단 사업을 하는 브루노 라가치를 만나 연인 사이로 18년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안젤라의 세 자녀는 ‘마카파니 미쏘니’라는 부모의 성을 함께 쓰고 있지만 매체에선 ‘미쏘니’ 성(姓)만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발표된 올 가을·겨울용 의상이다. 주제를 ‘자연’으로 삼은 안젤라 미쏘니는 나무껍질 같은 질감을 드레스에 표현했다. [밀라노 로이터=연합뉴스]
-그랬는데 어떻게 다시 회사에 돌아오게 됐나요.



“아버지가 ‘뭐든 이 회사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면 해봐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회사가 큰 우산 같은 거라면서요. 그리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회사 일엔 별 뜻을 안 두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어떻게요.



“시골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더 뛰놀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들한테 뭘 해먹이려다 보니 좋은 재료가 필요하단 것도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고 그런 음식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자니 회사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공장이 있던 지역에 ‘미쏘니 유치원’도 만들고 ‘미쏘니 농장’도 세웠죠. 그렇게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볼 때도 여유가 생겼지요.”



올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봄·여름 남성복 패션쇼가 끝난 뒤 무대로 나와 인사하는 안젤라 미쏘니.
-패션 디자인 일에 관여한 건 언제부턴가요.



“모든 걸 주도하던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기운이 없어 보였어요. 패션이란 게 늘 새로워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또 고객들은 지난번에 좋아했던 옷이 이번엔 왜 달라졌느냐며 투정을 부리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힘들다고 하셨어요. 다리를 다친 채로 컬렉션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매일 작업실에 못 나올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죠. 그렇게 컬렉션을 끝내고 났더니 어머니가 ‘이제 네가 해도 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때가 97년이었다. 어머니 로지타는 딸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완전히 은퇴하지는 않았다. 2004년엔 ‘미쏘니 홈 컬렉션’을 주도해 론칭했고 5년 뒤엔 영국 에든버러에 ‘미쏘니 호텔’을 열었다. 지난해 두 번째 호텔이 쿠웨이트에서 문을 열었고 오만과 브라질·터키에도 미쏘니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미쏘니의 올 봄·여름용 여성복과 남성복. 미쏘니 특유의 여러 가지 색실로 짠 니트 의류가 눈에 띄는 컬렉션이다. [미쏘니 제공]
-어머니에서 딸로 바뀌고 나니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고객들이 싫어하진 않던가요.



“어머니와 난 취향이 놀랍도록 비슷해요. 어머니가 벼룩시장에서 산 의자랑 내가 출장 가서 구입한 의자가 정말 똑같은 디자인이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죠. 장식이 화려한 거울도 비슷한 사례예요. 크기만 조금 달랐지 세부 장식은 정말 비슷했어요. 게다가 전 어머니가 했던 거의 모든 작업을 다 꿰뚫고 있는걸요. 예전 것을 잘 모아둔 아카이브가 있지만 거의 가지 않아요.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말이죠.”



 -딸인 마르게리타가 당신의 뒤를 잇는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좋죠. 지금 미쏘니에서 액세서리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둘째 딸 테레자도 예술학이랑 패션을 공부하고 있으니 누구든 뒤를 잇게 되겠죠.”(※건축학을 전공한 아들 프란체스코는 미쏘니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3대 모녀 디자이너로 이어지는 셈인데요, 여성 디자이너라 더 좋은 점도 있나요.



“신체적인 단점(difficult body)을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든 옷으로 바꿔 보려 하죠. 여성 자신만 알아요. 엉덩이 부분의 시접선을 살짝 옮기는 것, 가슴 라인의 재봉선을 아주 조금씩 수정해야 하는 것, 그런 건 여성 디자이너라서 더 잘 알겠죠.”



 -여성들이 ‘멋지게 옷을 입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음, 실루엣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길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머니는 제가 고르는 것보다 긴 옷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루엣이 이상한 옷을 입지는 않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체형과 실루엣을 살펴서 거울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실루엣을 고르는 게 현명한 방법이죠. 그리고 하나 더 명심할 것은 나이가 들었어도 ‘현대적인(contemporary)’ 옷을 고르란 겁니다. 80세 제 어머니도 구식 옷은 입지 않아요. 이건 빈티지랑은 다른 거예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요즘 디자인’이 뭔지, 꼭 옷 살 때 고려해 보세요.”



향수 모델로 나서며 ‘미쏘니 뮤즈’ 된 큰딸 … 액세서리 부문 맡아



안젤라 미쏘니와 큰딸 마르게리타, 작은 딸 테레자(맨 위에서 시계방향).
할머니 미쏘니에서 엄마 미쏘니, 딸 미쏘니까지. 브랜드 미쏘니는 3대 모녀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될 전망이다. 아직까지 명확한 후계 구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안젤라 미쏘니의 두 딸, 마르게리타(29)나 테레자(23)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큰딸 마르게리타는 23세 때인 2006년, 미쏘니 향수 모델로 활약하며 공식적인 미쏘니의 얼굴이 됐다. 모델이 되기 전부터 미쏘니의 패션쇼와 각종 이벤트에 참여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뛰어난 패션 감각과 미모를 겸비한 데다 미쏘니란 이름 덕분에 ‘패셔니스타’ 반열에 오르며 브랜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때 미국 뉴욕에서 살면서 연기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이탈리아로 돌아와 미쏘니의 액세서리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안젤라가 미쏘니에서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액세서리 디자인부터 시작한 것과 같은 길이다.



 젊은 미쏘니가 엄마 안젤라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최근 미쏘니는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중흥기를 맞고 있다. 영국의 일간신문 텔레그래프는 2006년 “미쏘니는 안젤라가 딸을 뮤즈(닮고 싶은 여성· 브랜드에선 상징적인 모델을 일컬음)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미쏘니의 지그재그 무늬 니트웨어를 더욱 섹시하고 멋지게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반세기 넘도록 생명을 유지해 온 브랜드가 그 덕분에 매년 20%씩 성장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둘째 딸 테레자도 후계자 물망에 올라 있다. 안젤라는 “테레자는 (조금 넉넉한) 체형을 고려해서인지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면서 “패션 감각이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평소에도 테레자는 자기 옷을 거의 다 스스로 만들어 입을 정도로 패션에 재능이 있는 편”이라고 말하며 둘째 딸에 대한 기대도 은근히 내비쳤다. 테레자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비영리 아동보호재단인 ‘마치오브다임즈’의 자선행사에 자신이 디자인한 마스크를 내놓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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