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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인 앞으로 월급 보내자 '전두환 나쁜X' 욕"

중앙일보 2012.03.15 03:00 종합 5면 지면보기
전두환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연희동 사저에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 간담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셋째부터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 예일대 신지웅 교수. 이날 간담회에는 모두 27명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성 회고가 퇴임 후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 전 대통령은 14일 오후 연희동 사저에서 미국 예일대학 경영대학원(MBA) 학생 27명과 만났다. 이날 만남은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41)씨와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신지웅 예일대 교수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둘은 오랜 친구 사이다. 연희동 사저 지하의 접견실에서 진행된 2시간가량의 대화를 JTBC가 단독 취재했다. 이 자리에는 이순자 여사와 5공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사공일 전 무역협회장이 함께했다. 전 전 대통령은 사공 전 협회장을 소개하며 “한국 경제가 쓰러져 갈 때 내가 대통령이 됐는데, 이 사람이 한국경제를 맡아서 본궤도에 올려놨다. 이 사람 덕분에 내가 경제의 도사처럼 대우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생들과 2시간 대화 … JTBC ‘뉴스10’ 단독 보도





-재임 중 난관 극복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대통령을 7년 했다. 선배 대통령들께선 4년 한다, 4년 한다 해놓고 세 번 네 번 하려다 정치 혼란이 생겼다. 나도 불란서(프랑스)식으로 두 번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거기 빠져서 세 번, 네 번 하려다가 불행한 사태가 생길까봐 7년(단임)만 했다. 내가 모범적으로 한번 시범을 보이고 후임들은 5년만 하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5년은 너무 짧다. 그분들도 7년을 하게 해줬어야 하는데…. 내가 7년 할 때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보좌 역할을 한 것도 사공 장관이다. 나는 군인 출신이라 민주주의도 군인식으로 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사공 장관처럼 미국에서 교육받고 온 사람이 옆에 있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할 수 있었다.”



-재임 중 가장 강조했던 정부의 역할을 말해달라.



“발전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물가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국민이 협조를 안 하고 정부가 신뢰를 받지 못하면 잘되지 않는다. 경제 관료들이 잘 뒷받침해줘서 물가 안정을 이룬 게 당시 경제 성공의 요인이었다. 물가가 안정되니까 그걸 기초로 해서 금융적 여유가 생기고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국민들이) 저축도 열심히 해줘서 그 여분을 가지고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한 분야 한 분야 발전시키고 개척하고 한 것이 이 정도까지 오지 않았나 믿고 있다.”



-재임 당시 한국 전자통신 분야의 기반이 닦였다. 이런 발전 추세가 계속되려면 또 어떤 쪽에 방점을 줘야 하나.



“내가 쉬게 된 지 20년이 넘는다. 우리나라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머리도 변한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책임질 일 없으면 머리가 둔해진다. 질문에 답변은 안 되고, 재미있는 경험담을 얘기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나 군인들 보면 같은 날 봉급을 준다. 이 친구들이 그걸 부인한테 갖다 줘야 하는데 ‘다 갖다 줄 바에야 뭐하러 일하느냐’면서 술을 마셔버린다. (그러곤 부인에겐) ‘전두환이 먹자고 해서 먹었다’고 핑계를 댄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된 다음에 (월급을) 부인 앞으로 송금을 (하게) 했다. 남자들은 외상값 갚으러 갔다가 다시 또 한잔하고 해야 하는데, 그걸 이 사람(이순자 여사)이랑 없앤 거다. 그래서 대통령이 나쁜 놈이라고 욕도 많이 했단다.”



이때 이순자 여사가 “선진국에선 다 카드를 쓰는데 우린 전쟁을 겪었기에 은행에 맡기지 않고 갖고 있어 예금고가 굉장히 얕았다. 집권하고 외국에서 빌려오는 돈의 반이 이자로 나간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대통령이 재밌게 말하려 했지만 월급까지도 바로 부인 은행에다 넣는 걸로 해서 예금고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에 예금고가 33%나 올랐다”고 부연했다.



-군에 있을 때나 대통령으로서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좌진을 어떻게 구성했나.



“내가 군사 작전 외엔 전문가가 아니니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선발해서 보좌진으로 두고, 주요 직책을 맡겼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분야는 그 분야의 중론을 들어 나와 전혀 모르던 사람을 임명했다. 사람을 잘 써야 나라가 잘된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내 보좌진이 아는 사람들을 써서 그 사람들 덕을 많이 봤다.”



 이 여사는 “전 대통령은 여러 사람을 봐뒀다가 (나중에) 그 사람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미리미리 경력관리를 해준 뒤 필요한 자리에 쓰곤 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일찌감치 핵무기를 만들다 선진국의 압박으로 중단했다는데,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 같은 나라는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우리와 친한 미국이 핵을 갖고 있지 않나. 북한은 갖고 있는데 그거 빨리 안 없애면 자살하는 거다. 소련(러시아)도 위협을 느끼고 중국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 김정일이 술 한잔 먹고 눌러버리면 북경(베이징)이 다 날아가잖아.”



-라이베리아와 니카라과에서 살아봤다. 한국도 이 나라들만큼 못살았다는데 지금은 비교가 안 된다. 그 나라들도 정부 육성 기업들이 있었는데 왜 결과가 다른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해서 보니까 기술이 많은 것처럼 말만 그랬지 수출하고 팔 수 있는 기술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전화기 하나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수출할 수 있었다. 경제팀에서 우리 나라는 재료를 (외국에서) 사와서 잘 만들어 팔아야 먹고 산다고 했다. 그 정책이 성공했다. (국내에서) 교육도 시키고 외국에 유학도 시키고 했다. 그걸 모든 국민이 알고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데서 나보다 더 국민들이 열정을 가지고 나섰다.”



이 여사는 이 대목에서 광케이블·자동차·금형·원자력 발전소 등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먹고사는 기초를 이 양반이 계실 때 다했고, 매년 10%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며 “마누라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임 시절을 회고해 볼 때 아쉬움이 남는 점은.



“누구나 무슨 일을 맡으면 거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어찌 해야겠다는 구상을 하곤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전임 대통령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걸 조사하다보니 대통령이 됐다. 내가 (처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이거보다 잘했을 거다. 다행히 좋은 보좌진이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대로 실패하지 않고 끝난 게 감사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전쟁도발이다. 전쟁이 없도록 미국을 위시한 우방들이 여러 면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수시로 도발할 위험성이 있는 게 걱정이다. (국민들) 소득이 많이 올라왔지만, 아직도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는 걸로 안다. 그런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또 조그만 권력 가지고 있다고 그걸 남용하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될 수 없다. 권력 남용 없는 사회가 돼야 행복한 사회다.”



전 전 대통령은 “아주 오랜만에 외국 젊은이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유익한 여행이 되길 기원한다”며 대화를 마쳤다.



전 전 대통령의 육성 회고의 상세한 내용은 15일 밤 10시50분 JTBC에서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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