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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조사팀, 한수원 숙소 안 쓰고 여관 투숙

중앙일보 2012.03.15 00:41 종합 8면 지면보기
14일 오후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정문 앞. 청색 제복을 입은 청원경찰 20여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 앞에는 부산·울산 환경단체 회원 20여 명이 ‘고리원전 1호기 폐쇄하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왜 숨기기에 급급한가” “고리원전 폐쇄하라”고 외쳤다. 이 모습을 지켜본 고리원전의 한 직원은 “안전엔 문제가 없고 보고만 제때 하지 않았는데 왜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12분 완전 정전’ 조사 현장

 같은 시각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팀(팀장 유국희)은 고리 1호기 운영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진과 함께 1호기 제1비상발전소 안의 디젤발전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16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본격 조사에 앞서 가장 먼저 찾은 디젤발전기는 이번 ‘완전 정전(Black out)’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조사팀이 비상 디젤발전기를 주목한 것은 외부 전원이 모두 끊기면 즉시 자동으로 가동돼야 하지만 사고 당시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조사팀은 이날 비상 디젤발전기를 비롯한 모든 전력 계통 점검 리스트를 만들었다. 15일 오전까지 디젤발전기가 비상시 자동으로 작동하는지를 먼저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는 사고 당시의 실제 상황과 거의 비슷하도록 외부 전원을 차단하게 된다. 그런 뒤 즉시 발전기가 가동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비상 디젤발전기는 평상시에도 매월 한 번씩 정상 가동 여부를 확인해 왔다. 지금까지는 매번 정상 작동했다지만 사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조사팀은 이번에 발전기가 잘 돌아간다고 해서 성급하게 정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고 했다. ‘연습’ 때는 잘 돌아가고, 실제 상황에서 작동되지 않는 원인까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잘 돌아가지 않으면 거기에 맞는 조사를 하게 된다.



 사고 때 작동되지 않은 원인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비상 디젤 발전기의 유압밸브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조사팀에 보고했다. 조사팀은 이를 토대로 이 부분도 정밀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유압벨브는 비상시 디젤 발전기가 작동하도록 엔진을 점화하는 역할을 한다.



 조사팀은 디젤발전기 외에도 가정의 ‘두꺼비집’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보호계전기도 설치 업체를 불러 15일께 함께 조사하기로 했다. 이때도 당시 상황을 재현한 뒤 외부 전원이 어떻게 끊기고, 다른 전력 계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조사팀은 이에 앞서 관련자들을 불러 사고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



 현장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엄재식 안전정책과장은 “이번 사고를 일으킨 원인과 사고 사실 은폐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원인이 명쾌하게 밝혀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해 조사에 들어간 조사팀은 한수원 측이 제공한 한빛아파트 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지 않고 인근 여관에서 지내며 한수원과의 거리를 뒀다.



 2000여 명이 근무하는 고리원전 내부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한 직원은 “그동안 국가보안시설을 핑계로 외부와 소통을 일부러 피한 측면이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폐쇄적인 운영 방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정전 사고를 한 달 넘게 은폐한 것과 관련해 다음 달 원전 등 국가 핵심 기반 분야에 대한 감사를 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이달 기초조사를 거쳐 다음 달부터 감사를 할 예정이다. 문제가 크다 싶으면 원전에 대해 별도 감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부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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