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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정책 석학 앨리슨 “김정은, 미국에도 도발할 수도”

중앙일보 2012.03.15 00:32 종합 12면 지면보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현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레이엄 앨리슨 박사. [변선구 기자]
“세계 53개국 정상이 몇 시간씩 비행해서 모이는 것 자체가 잠재적 도발세력엔 강력한 메시지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D-11
미 하버드대 벨퍼연구소장 … 서울회의 현인회원으로 방한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71) 하버드대 벨퍼센터 연구소장은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의 의미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핵안보 정상회의 현인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는 13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세계적인 핵안보와 북한 정세에 대해 진단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한·미·중 3국의 대북정책을 “실패의 역사”로 표현하고 “ 또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세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통일 후 플랜까지 고려한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 유화 분위기에만 현혹되지 말라는 지적이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공화)에서 국방부 특별보좌관을, 빌 클린턴 정부(민주)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초당파 핵안보 전문가다.



 -지난달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핵 위기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슬로 모션 버전’이라고 했다. 북핵 위기에 대한 평가는.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외교적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주도한 흐루쇼프에 비해 김정일은 몇 배는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쿠바 위기는 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11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북핵 위기는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젊은 지도자인 그의 아들이 갑자기 권좌에 올랐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같은 도발뿐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뭔가 도발을 꾸밀 가능성이 높다.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하지만 최근 미·북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잠정 중단과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에 합의했다. 미국은 북에 속지 않겠다는 뜻으로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 개인적으론 같은 말을 두 번 사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지한다. 북한은 ‘실패국가’이면서 ‘강탈자’인 데다 극단주의적 성향이다. 이런 상대라면 같은 말을 두 번 사고 위기를 모면하는 게 맞다.”



 -대북 정책 제언을 한다면.



 “올해는 세계 주요국의 리더들이 모두 바뀌는 중요한 해다. 북한이 어쩌다 보니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이 됐다. 지난 10년간 한·미·중 어느 나라도 대북 정책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기 ‘북한 정권교체’와 ‘북핵 폐기’를 주장했지만 이룬 게 없다. 중국 역시 극도로 근시안적 정책을 펴왔다. 북한은 항상 주변국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옵션을 택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올해 강성대국이란 구호를 외친 북한으로서는 뭔가 도발이라도 해야 할 판이고, 따라서 이를 통제할 국제공조가 절실하다. 한·미·중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김정일 사후 체제 북한 정권에 대한 전망은.



 “김정일은 뛰어난 협상가였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매년 ‘위대한 협상가’를 선정하는데, 김정일을 후보로 올려야 한다는 농담 섞인 주장도 교수진에서 나올 정도였다. 실패한 정권을 그 오랜 세월 동안 끌어오며 핵무기를 지렛대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다 얻어온 게 북한이다. 김정일과 부시 중 누가 승자인지는 자명하다. 물론 이런 북한 정권도 실패국가이므로 언젠가는 무너질 거다. 다만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말라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주변국의 대북 정책기조가 돼야 한다.”



 -서울 회의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평가는.



 “북한을 코앞에 둔 서울 역시 핵테러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이란 핵 위기가 발생한 지금, 이란과 북한이 모종의 핵 협력을 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런 때 서울에서 핵안보 정상회의를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전수진 기자





쿠바 미사일 위기 다룬 『결정의 에센스』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국제정치학자로 핵정책이 전문이다. 저서 『핵테러』(Nuclear Terrorism)는 뉴욕 타임스의 ‘2004년 100대 저서’로 선정됐다. “핵테러 방지를 국가의 최우선 정책순위로 설정할 것”을 제언해 핵테러를 국제사회의 핵심 어젠다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정책 결정과 리더십을 다룬 『결정의 에센스』(Essence of Decision·77년)는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스쿨 초대 학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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