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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신 모았더니 괴물 되었더라

중앙일보 2012.03.15 00:08 종합 22면 지면보기
김기라, 오리엔탈 스펙터 몬스터, 2011, 197×168㎝. 동서고금의 여러 신 이미지를 손으로 찢어 붙인 포토 콜라주다. [사진 두산갤러리]
이 신은 고대 이집트 세트(Seth)상의 머리를 하고 있다. 세트는 파괴의 신이다. 잘 모시지 않으면 저주가 내린다. 고대 로마의 청동상, 아프리카 가면도 들어갔다. 중국 송나라 불상의 가슴에 인도 시바상의 팔, 그리고 인도에서 섬기는 신성한 황소의 꼬리와 다리를 달았다. 20가지 가까운 이 우상들이 총출동한 이 신의 정체는 뭘까. 바로 ‘괴물’이다.


김기라 개인전 ‘공동선’
29일까지 견지동 두산갤러리

 미술가 김기라(39)씨가 각종 신 이미지를 하나하나 손으로 찢어 붙여 만든 포토 콜라주다. 김씨는 이 신작을 ‘스펙터(specter)’, 즉 망령이라 이름 붙였다. 역사·사회적 의미가 축적된 신화·성상(聖像)의 이미지를 비튼다. 종교가 공존· 조화보다 갈등·다툼을 유발했던 세상사를 투영하고 있다. 성상을 해체·변형한 이 작품들은 인간이 끝없이 스펙터를 창조하는 한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경고한다.



 ‘스펙터 몬스터 시리즈’를 비롯한 김기라의 개인전 ‘공동선(共同善)-모든 산을 오르라’가 서울 견지동 두산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02-708-5050)에서 29일까지 열린다. 대형 사진 콜라주 17점, 관련 드로잉 36점 등 스펙터 시리즈 60여 점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시대·지역을 아우르는 500여권의 문화사 서적을 참고했다.



 김씨는 또 골동품 신상(神像)을 300여 점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작가가 지난 8년간 인도·일본·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그는 “작가로서 공부하는 데 있어 실물만큼 좋은 재료도 없었다. 서구 리얼리즘 사조에선 찾기 힘든, 즉 동양 목조각의 관념적 이미지에 심취해 종교에 대해 숙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만신전(萬神殿)’을 방불케 한다. 이슬람·불교·힌두교 등 세계 종교의 상징물을 한데 모은 까닭이다. 이곳에선 신의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 괴물 형상이나 인간이 만든 신의 모습이나 결국은 같습니다. 그걸 망령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성상을 만들거나, 교회를 짓거나, 신화로 기록해 남긴 것들은 결국 신화와 종교에 기대 인간이 만들고 섬겨왔던 것들이죠.”



 전시 제목 공동선은 무슨 뜻일까.



 “저도 크리스천입니다. 공동선이란 이름 아래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사고’를 은유한 것이죠. 세상의 모순과 대립도 거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형식(성상)이 곧 이념이 되고, 나아가 망령이 돼 인간을 제약하는 현실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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