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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신상 털기

중앙일보 2012.03.15 00: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0년대 잡지 ‘여성’에서는 ‘한때 화제의 여성들의 후일담’이라는 제목으로 당대 사회에서 유명해졌던 여성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탐문한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다뤄진 ‘화제의 여성’들은 대부분 배우자와 파혼·이혼·사별 등을 하거나 본인 또는 가족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예를 들어 도쿄대 문리과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조경희(趙慶喜)라는 여성은 “얼마 전에 늙으신 그 어머니가 따님으로 해서 갑자기 자살을 했다 하여 아는 사람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되고 있는데, 원인은 모른다고. 씨(氏)는 넉 자(字) 이름 가진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다”고 서술돼 있다. 간접적으로 표현했지만 이것은 곧 조경희가 일본 남자와 결혼했고, 이 일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과거 매일신보 여기자였던 김원주(金源珠)에 대해서는 “지금은 벌써 나이도 삼십 고개를 넘고 여러 애기의 어머니가 되어 가끔 재동 거리에서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부대한 씨의 가정부인으로 차린 사뭇 달라진 풍채를 볼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즉 결혼해 평탄하게 사는 여성에 대해서는 아이를 낳고 나이 든 뒤 몸이 비대해져 몰라보게 됐다는 것으로 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기자는 결국 ‘상서롭지 못한’ 일로 화제가 된 여성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하며 그들의 사생활과 박복한 팔자를 폭로하고 싶은 듯 보인다.



 “세상 화제에 올랐다 사라진 여인들을 찾아 그 뒷얘기를 탐문해서 궁금한 분들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화제에 올랐다는 그 사실이 벌써 과도기가 낳은 대개는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었던 만치 기자는 등장되시는 제씨에게 될 수 있는 한 붓을 둥글게 돌려 보는 노력을 하노라고 했습니다만 능란치 못한 붓이 악의 없이 건드린 데가 없잖아 있을 법도 하오니, 저널리즘을 이해하시는 점에서 노여워 마시기 바랍니다.”(‘한때 화제의 여성들의 후일담’ 서문, ‘여성’, 1937.7)



 ‘튀는’ 여성은 남성보다 더 잘 눈에 띄고, 더 쉽게 공분(公憤)의 대상이 되며, 그 대가로 그녀들의 사생활은 낱낱이 파헤쳐지고, 세상의 저주를 받는다. 최근 욕설, 폭력, 막말 등을 행한 것으로 유명해진 여성들에 대해 언론이 기사화하고, 네티즌이 ‘신상 털기’를 하는 과정을 보면 이러한 방식으로 화제의 여성을 그리는 일은 오늘날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실로 ‘만만한 게 여성’인 듯싶다. 그 여성들의 행동도 옳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언론과 대중의 과도한 ‘응징’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반성해봐야 한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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