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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의 적은 내부에 있다

중앙일보 2012.03.15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지난달 전원 공급이 12분간 중단됐다. 전원 상실이 더 길어졌다면 냉각수가 증발하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1년 만에 일어난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고도 사고지만 더 큰 문제는 고리원전 측의 사후 조치다. 외부 전원이 차단되고 비상용 디젤 발전기까지 작동하지 않는데도 즉시 취해야 할 비상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자체 수습에 나서 한 달이 지나서야 사고 사실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다. 심각한 안전 불감증과 정보 은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수원은 후쿠시마 사고 1주기와 겹치는 미묘한 시기에, 그것도 수명을 연장한 고리 1호기의 고장은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이 공개되면 원전 폐기 압박이 한층 거세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잘못된 판단이 대형 참사를 부른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단순한 조작 실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하려 원칙에 위배되는 조치들이 꼬리를 물면서 원자로 폭발로 이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쓰나미가 1차 원인이었지만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바닷물을 즉각 투입하지 않은 게 재앙을 키웠다. 마지막까지 원자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책임 전가와 정보 은폐에 급급하다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다.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전 사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원전의 전원이 끊겼다는 것은 사람의 동맥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중대 사고가 폐쇄적인 조직 논리에 덮인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한수원은 얼마 전 부품 납품 비리로 홍역을 치렀다. 원전 감독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주재원들도 사고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 안전대책을 한층 강화했다고 장담하지 않았는가.



 원전의 적(敵)은 외부의 반대 집단이 아니다. 바로 내부에 있다. 이번 사고는 한수원의 자체 조사에 맡겨선 안 된다. 독립기관이 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감사원과 지식경제부도 함께 정밀 조사에 나서야 한다. 원전 사고는 ‘삼진 아웃제’의 일반 사고와 차원이 다르다. 단 한 번이라도 불법 행위에 개입했다면 엄중히 문책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직원들의 인위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시나리오별로 원전 사고 대응 매뉴얼을 꼼꼼히 손질해야 할 것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에게 원전은 유일한 대안(代案)이다. 어느 때보다 원전 반대 흐름도 첨예하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에 ‘통제되지 않는 원전’이란 불안한 신호를 보냈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원전이 설 자리는 없다. 최악의 경우 고리 1호기를 폐기한다는 각오로 원전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원전은 투명해야 신뢰를 얻는다. 그것이 한수원을 바로 세우고 원전을 살리는 길이다. 원전 사고를 숨기면서 원전 강국을 꿈꿀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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