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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회와 정부가 합작한 시장원리 훼손

중앙일보 2012.03.15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여신금융전문업법(여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과 함께 대표적으로 불합리한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지목했던 법안이다. 당시에는 흡사 거부권이라도 행사해 여전법 개정안의 시행을 저지할 듯 강경했다. 그런데 막상 국회가 개정안을 의결해 정부에 넘기자 슬그머니 원안대로 처리해버렸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위헌 시비 여부를 떠나 재의(再議)를 요구할 게 아니라면 국회에서 통과된 만큼 영세상인 보호라는 입법 취지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장원리를 해치는 불합리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는커녕 오히려 국회의 입법 취지를 최대한 살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시장경제 원리는 아무렇게나 훼손되어도 좋다는 것인지, 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아무리 불합리해도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반시장적인 여전법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것은 다분히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세가맹점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스를 경우 예상되는 반발이 총선에서 불리한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거부권 행사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영세상인들의 표심을 의식해 불합리한 법안을 눈 딱 감고 통과시킨 국회나 다를 게 없다.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정치권을 손가락질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무리한 ‘떼법’의 통과가 가져온 폐해는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영세상인들을 대변한다는 유권자시민행동과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주요 신용카드회사에 카드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면서, 해당 카드의 거부운동을 예고했다. 시장경제 원리 대신 집단행동과 물리적 위협이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한통속이 돼 포퓰리즘에 무릎을 꿇은 만큼 시장원리는 이제 더 이상 설 땅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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