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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중앙일보 2012.03.15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시니 조심하세요.” 백화점 같은 곳에서 손님 아닌 물건이나 커피를 더 존대하는 언어습관을 자주 접한다. 물론 틀린 경어법이다. 식당에서 자기보다 어린 여종업원을 ‘언니’ ‘이모’라고 부르는 요즘 풍조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가씨’ ‘아주머니’ 또는 ‘여기요’ ‘여보세요’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언어는 일종의 생물(生物)이므로 세태를 반영하기 마련이지만, 변화에도 원칙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요즘처럼 국어 파괴가 다방면으로 심각한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국립국어원이 기존 『표준화법 해설』(1992년)을 20년 만에 개정한 『표준 언어예절』을 내놓았다. 호칭어·지칭어·경어법 등 일상에서 무수히 쓰이는 말들을 좀 더 바르게 다듬기 위함이다. 여동생의 남편에 대한 호칭으로 『표준화법 해설』에서는 인정하지 않던 ‘매부’ ‘매제’ ‘제부’를 허용하는 등 바뀐 언어 현실에 부응한 점이 눈에 띈다. 부모 호칭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권하되 격식을 갖추지 않은 자리에서는 어른이 돼서도 ‘아빠’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한 것도 세태 변화를 따른 조치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자녀 수가 적어 사촌 간 교류가 긴밀해진 상황을 감안해 조부모·손주, 사촌 간 언어 예절을 신설한 대목도 의미 있다.



 문제는 언어 예절을 북돋우려는 관련기관·학계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날로 황폐해지는 국어 환경에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 사이버 공간에서의 비속어·축약어 공해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다. 중·고교생의 80.3%가 대화 시 욕설·협박·조롱이 담긴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어기본법은 국가기관·지자체장이 각기 ‘국어책임관’을 두고 올바른 국어 사용을 꾀하도록 했지만, 바로 그 행정기관들이 영어·한자·국어가 마구 뒤섞인 정체불명의 신조어를 자랑이라도 하듯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국어사랑은 한글날에만 반짝 티를 낼 일이 아니다. 정치지도자·국가기관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말을 누더기 꼴로 방치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이니 세계화니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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