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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인사이트] ‘대기업 때리기=경제 민주화’ 성립 안 돼

중앙일보 2012.03.13 00:00 경제 3면 지면보기
김광기
선임기자
주주총회 시즌이다. 앞으로 2주간 500여 개의 상장회사가 주총을 연다. 올 주총은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가운데 열리는 것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기업들의 대응전략도 읽어 볼 수 있다.



 우선 주목할 것은 대그룹 오너와 2~3세들이 대거 사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 경영 전면에 나선다는 사실이다. 현대차와 SK, 두산·LS·대한한공 등의 그룹이 그렇다. 오너들의 이사 등재는 법상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들어와 책임경영을 하면서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벌판으로 나서는 대신 보호막을 찾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한도를 연봉의 3배(사외이사)~6배(사내이사)로 제한하는 상장사가 164곳이나 된다. 책임한도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너무 작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들은 또 신임 사외이사에 검찰·국세청·공정위 등 권력기관과 고위 공직 출신을 대거 포진시켰다. 그 숫자가 57명으로 기업인 출신(37명)보다 많다. ‘사외이사는 로비용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은 올해도 찾아보기 힘들다. 기관투자가와 소액투자자 등 일반 주주들에 대한 홀대는 여전하다. 주총이 임박해서야 주총 안건을 통보하고, 주총 날짜도 서로 짠 듯 금요일 하루로 몰았다.



 기업들이 직시해야 할 게 있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년 이후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일반 주주들의 협조와 응원이 꼭 필요할 것이란 사실이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대기업을 개혁 대상에 놓고 정책을 펴 나갈 게 분명하다. 야당은 재벌 해체까지 주장한다. ‘대기업 때리기=경제 민주화’라는 등식을 들이대기도 한다.



 민주화가 역사 발전에 꼭 필요한 이유는 소속원들의 주인의식과 참여, 헌신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뤄낸 정치 민주화는 한마디로 국민의 기본권과 참정권을 법에 있는 대로 되살리는 과정이었다. 기업과 관련한 경제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법상 보장된 주주의 기본 권리, 즉 의결권을 복원시키는 게 첩경이다.



 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기업 때리기가 아니다. 기업이 꾸준히 성장해 주식가치가 올라가길 바란다. 오너 가문이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에 홀로 맞서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일반 주주들과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도 주주들의 의결권을 존중해 주인으로 대접하는 진정성을 서둘러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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