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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제주 올레 수입하겠다” 일본이 먼저 나선 이유

중앙일보 2012.03.09 04:00 Week& 4면 지면보기
17개월 만이다. 2010년 10월 29일 규슈 남부 여행 기사부터 오늘 규슈올레 기사까지 week&이 다시 일본을 다루는 데는 꼬박 17개월이 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여행 기사는 쓸 수 없었다. 2만 명 가까운 사상자가 난 사건도 참혹했지만, 솔직히 방사능 공포는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사실 week&은 1년 전 일본 규슈 지역을 취재했다.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이 규슈에 개통하는 시점에 맞춰 기사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규슈 신칸센 개통 하루 전에 동일본 대지진 사건이 터졌다. 1년 전 그 기사는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본 관광 시장은 대지진 못지않은 참사를 겪었다. 무엇보다 일본 관광업계 최대 시장인 한국이 등을 돌렸다.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최병길 부소장에 따르면 2010년 244만 명이었던 한국인 관광객 숫자는 2011년 166만 명으로 추락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비즈니스 고객이고, 얼마 안 되는 여행자도 대부분 지난해 하반기 이후 ‘떨이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겨우 채운 숫자다. 일본 반값 여행은 지금도 여전하다. 5만9000원짜리(세금 별도)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 상품까지 나와 있는 형편이다. 반값은커녕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지난 1년 week&은 고민을 거듭했다. 일본 기사를 언제 다시 내보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초청 의뢰가 쇄도했다. 어림잡아도 서른 번은 족히 넘었다. 몇몇 국내 언론은 지난해 늦여름부터 일본 여행 기사를 내보냈지만 week&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일본 관광장관이 서울 한복판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일본 전문 국내 여행사가 살려달라고 사정을 해도 week&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규슈올레 기사를 내보냈다. 사고 이후 1년이 흘렀고, 올레길이 일본에 수출됐다는 뉴스가 워낙 컸다. 누가 뭐래도 규슈올레는 한국 시장을 회복하려는 일본의 생존 전략이다. 규슈에 올레를 내자고 먼저 제안한 곳도 규슈관광추진기구다. 규슈올레 4개 코스는 모두 지역 공무원이 두 발로 걸어 닦은 길이다. 그러니까 규슈 정부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못하고 대기업도 못한 일을 제주올레가 거둔 것이다.



 규슈 측은 일정 마지막 날 숙소로 가고시마의 료칸 하쿠이스칸(白水館) 별궁을 내줬다. 하쿠이스칸 별궁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바로 그 장소다. 그 밤 우리 일행은 국가 수반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절박한 처지가 눈에 밟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일본은 어떻게 한국에서 길을 수입해 자기네 관광상품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모방에서 시작해 끝내 세계시장을 석권한 일본인의 근성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 같아 서늘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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