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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24> 서울성곽길

중앙일보 2012.03.09 04:00 Week& 4면 지면보기
서울은 원래 성곽의 도시다.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잇는 서울성곽은 사적 제10호다. 서울성곽길은 이 성곽을 따라 조성된 약 18.6㎞에 달하는 길을 말한다. 낙산공원·남산공원·와룡공원·삼청공원 등 10개가 넘는 녹지공원과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을 포함해 170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성곽을 따라 산재돼 있다. 서울성곽길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600년간 도성을 지켜왔다. 역사·문화와 생태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서울을 대표하는 ‘걷기 좋은 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3월 이 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지정했다. 서울시 도보관광과 김광미 문화관광해설사에게 4개의 코스 중 낙산과 북악산 코스를 추천받았다. 낙산 코스는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어 좋다. 북악산 코스는 서울성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낙산공원에서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봄 분위기에 가슴이 설렜다. 북악산에 올라서는 600년 도읍지 서울의 정기를 받는 느낌이었다.


성곽 끊긴 곳 없는 북악산 코스 … 무학대사 아니라도 ‘배산임수’ 보이더라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창신동에서 바라본 낙산성곽의 모습. 사진 6장을 연결해 파노라마로 성곽의 모습을 담았다. 성곽 안쪽으로 왼편 멀리 남산타워, 오른쪽으로 인왕산이 보인다.


# 봄기운 머금은 산책길 낙산 코스



한창 공사 중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 광희문에서 시작되는 낙산 코스는 완만한 산책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광희문과 동대문을 지날 때 복잡한 도심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동대문시장 통을 빠져나오면 성곽을 따라 낙산공원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낙산 코스는 혜화동에서도 진입하기 쉬워 대학로를 찾는 젊은 커플들에게 새로운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



 역사문화공원에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다 발견된 이간수문과 성곽 일부가 복원돼 있었다. 이간수문은 남산 방면에서 내려온 물을 성 밖으로 내보내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수문을 쌓기 위해 사용된 돌의 가로 길이가 2m를 훌쩍 넘어 보였다. 세로와 높이 각 1m 정도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이 수문을 이용해 도성 내 흐르던 물의 양을 조절했다고 한다. 이간수문을 통해 빠져나간 물길은 청계천 본류와 합류한다. 청계천은 예전부터 자주 범람했는데 영조는 균역법과 탕평책, 청계천 치수사업을 자신의 3대 업적으로 내세울 정도로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흥인지문(동대문)은 천막에 가려져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흥인지문을 지나 낙산공원까지는 한산한 길이 이어졌다.



 “서울에 이런 곳이 다 있네.” 산책을 하던 한 젊은 여성이 신기한 듯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원래 낙산공원 자리에는 1969년에 지어진 5층짜리 시민아파트 41개 동이 모여 있었다. 흉물 취급받던 아파트는 모두 철거되고 2002년 깔끔한 시민공원으로 변신했다.



 낙산공원 입구 부근 창신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비우당’이라는 소박한 초가가 한 채 있다. 조선 태조 때부터 세종 때까지 벼슬을 지낸 유관(1346~1433)의 집으로 청백리였던 그는 지붕이 새는 데도 보수하지 않고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쳤다고 한다. 후에 유관의 외가 5대손이자 실학자인 이수광(1563~1628)이 이 집에서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집필했다.



 봄이 되면 낙산공원을 둘러싼 성곽에는 생명력이 넘친다. 성곽에 다닥다닥 붙은 담쟁이에 새싹이 오르고 가끔 성곽 틈 사이로 겨울잠에서 깬 뱀들이 머리를 내민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 뱀들이 산다고 하니 신기했다. 성곽은 도시가 발전하면서 그 뒤 생긴 여러 구조물의 일부로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 낙산공원 끝자락 성곽은 가톨릭대 담장 역할을 하고 있었고 혜화문에서 뻗어 나온 성곽은 서울시장 공관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끊어진 성곽은 건물과 건물의 경계 역할이나 민가의 축대로 용도 변경됐다. 서울의 역사인데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꺼뭇꺼뭇하게 때가 타고 바람에 깎여 둥글둥글해진 서울성곽은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자연에 그대로 녹아든 포근한 모습이었다.



혜화칼국수 혜화로터리 부근에 있다. 생긴 지 30년 정도 됐다. 주요 메뉴로는 진한 사골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이 조화를 이루는 국시(7000원), 석쇠에 구워 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 경상도씩 바싹불고기(2만3000원), 통통하고 부드러운 대구살로 만든 생선튀김(2만3000원) 등이 있다. 추석과 설날만 쉰다. 02-743-8212.



# 우거진 숲길 상쾌한 북악산 코스



창의문은 4소문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 문을 따라 성곽을 이루는 돌의 크기와 색깔이 축조된 시기에 따라 서로 달랐다. 물을 많이 먹은 수묵담채화처럼 고즈넉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북악산은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점찍은 곳이다. 감사원 뒤편 와룡공원부터 숙정문~창의문에 이르는 성곽길은 2007년에서야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해서 성곽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숲이 우거지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차 소리나 소음도 거의 없다.



  서울시장 공관에서 끊어졌던 성곽이 성북동을 지나 와룡공원에서부터 다시 모습을 보였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한 뒤 통행증을 받아 들고 길을 계속 걸었다. 숙정문(북대문)~곡장~1·21사태 소나무를 거쳐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를 넘어 창의문(북소문)까지 이르는 코스로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세종 때와 숙종 때 만들어진 성곽이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성곽 곳곳에서 공사의 책임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축성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 놓은 각자(刻字)를 볼 수 있다. 곡장(曲墻)은 쳐들어오는 적을 관찰하고 공격하는 초소로 산세가 험한 곳에 설치됐다. 서울성곽에는 북악산과 인왕산에만 있다고 한다. 반원형으로 둥그렇게 튀어나온 곡장에 올라서니 서울 도심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백악마루로 오르는 길에 있는 소나무에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5발의 선명한 총탄 자국이 치열했던 당시의 총격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북악산 성곽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75년부터 대대적인 성곽 보수공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백악마루에서 본 서울 도심은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의 전형이다.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구성됐고 그것을 남산과 낙산·인왕산이 감싸 안은 모습이다. 웅장한 북악산을 병풍 삼고 청계천 지류를 앞에 둔 경복궁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다. 고령자와 아이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창의문은 4소문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1623년 인조반정 때 반란군이 이 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창의문에는 그때 공신의 이름을 적은 현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하지만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적외선탐지기를 설치해 문루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어 멀리서만 볼 수 있었다.



 북악산 코스는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서인지 성곽이 끊기거나 부서진 구간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숲도 우거져 걷는 내내 상쾌했다. 북악산 코스를 걸을 때는 유난히 뒤를 많이 돌아봤다. 산세가 험준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힘이 들 때가 있는데 잠시 멈춰 도심 쪽을 바라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졌다. 북적거리는 서울도 멀리서 바라보니 그저 평온한 모습이었다.



성너머집 감사원 뒤쪽 와룡공원 입구 부근에 있다. 성북동 쪽으로 전망이 탁 트여 있어 평상에 앉아 닭볶음탕을 먹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메뉴는 닭볶음탕과 닭백숙. 닭볶음탕은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다. 장작불을 때는 가마솥에 요리하는데 닭볶음탕에 들어 있는 주먹만 한 통감자, 밑반찬으로 나오는 전과 김치도 맛있다. 1인 1만1000원. 매월 첫째·셋째 일요일 휴무. 02-764-8571.





●길 정보 서울 성곽길은 모두 18.6㎞, 4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북악산과 인왕산은 산세가 험준한 편이지만 데크를 설치해 걷기가 수월하다. 현재 인왕산 코스는 성곽 정비공사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고 있어 우회해야 한다. 북악산 부근은 군사통제지역으로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걸을 수 있다. 낙산과 남산 코스는 길이 완만해 누구든 쉽게 걸을 수 있다. 각 코스는 3~4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시 문화관광 홈페이지(dobo.visitseoul.net)를 통해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이번 달 ‘그 길 속 그 이야기’에서 소개한 ‘서울성곽길’ 영상을 중앙일보 홈페이지(www.joongang.co.kr)와 중앙일보 아이패드 전용 앱, 프로스펙스 홈페이지(www.prospecs.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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