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ek&] 일본어 몰라도 길 잃을 걱정 없어요, 규슈 올레

중앙일보 2012.03.09 04:00 Week& 1면 지면보기
일본에 올레길이 났다. 이름하여 규슈 올레. 우리나라 걷기여행 길이 해외에 첫 진출한 사례다. 봄비 내리는 날 오쿠분고 올레 유자쿠공원을 지나면서.


지난달 28일 일본 규슈에 올레길이 열렸다. 일본 땅에 제주 방언 ‘올레’가 붙은 길이 생긴 것이다. 규슈 올레 개장은 아마도 올해 여행 레저 부문 최고의 뉴스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걷기여행 길이 해외에 진출했다는 의의에다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외면당했던 일본 여행이 재기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week&도 현장에 있었다. 지난달 28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코스 발표회에 참석했고, 이후 나흘 동안 규슈 올레를 걸었다. 남한의 절반 정도 크기인 규슈(九州) 섬 동서남북에 박혀 있는 규슈 올레를 하루에 하나씩 걸으려면 오전에 6시간 걷고 오후에 4시간 이동하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더욱이 규슈 올레를 걷는 나흘 중 사흘이나 비가 내렸다. 그러나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일정 내내 보인 일본인의 열의와 관심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무려 16개 언론이 취재를 나왔다. NHK를 비롯한 각종 방송, 지지통신·연합통신 등 통신사, 요미우리·닛케이·마이니치 등 전국 신문, 그리고 수많은 규슈 지역 언론이 코스 발표회장부터 5일 내내 우리 일행을 따라다녔다. 북규슈 지역방송 RKB는 5분40초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규슈 올레를 조성한 규슈관광추진기구와 지역 공무원의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규슈 올레는 제주 올레 이정표(사진)인 간세·리본·화살표를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얼마나 부지런히 설치했는지 일본어를 몰라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방사능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와 북규슈의 후쿠오카는 1000㎞ 거리다. 서울과 후쿠시마도 1000㎞쯤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규슈는 대지진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다. 2010년 규슈를 방문한 외국인 중 65%가 한국인이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인 관광객은 35% 이상 급감했다.



 규슈는 발길을 끊은 한국인을 어떻게든 다시 불러야 했다. 규슈가 제주 올레를 수입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규슈 올레는 한국인을 겨냥한 맞춤 상품인 것이다. 규슈 올레를 조성한 4개 시 모두 온천마을이고, 4개 코스 중 2개 코스는 올레가 끝나는 지점에 온천이 있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이미 코스 발표회 한 달 전 한국 여행사를 초청해 상품 가치를 타진했다.



 그럼, 제주 올레는 왜 올레를 수출했을까. 돈을 벌려고? 글쎄다. 1년 업무 제휴비 명목으로 받는 로열티가 100만 엔(약 1400만원)이니 그리 큰 벌이는 아니다. 그보다 올레라는 브랜드가 해외에 전파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16개 일본 매체가 규슈 올레를 취재했지만 실제로는 제주 올레의 성공 신화를 보도하고 있었다. 당장 다음 달에 70명이 넘는 규슈 올레 관계자가 제주 올레를 체험하러 들어온다. 규슈 올레의 성공 가능성을 묻는 일본 언론의 질문 공세에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본에서 먼저 제주 올레가 떠야 한국인도 규슈 올레를 찾지 않을까요? 비결이 궁금하면 제주 올레를 걸어 보세요. 한 해 200만 명 이상이 걷는 이유가 올레길 위에 있으니까요.”



 아무리 많은 한국인이 규슈 올레를 걸어도, 규슈 올레는 여러모로 한국에 남는 장사인 듯 싶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