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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로 말하는 판사, 판결도 심판 받는다

중앙일보 2012.03.09 01:11 종합 2면 지면보기
조용호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8일 법정에 들어가기 앞서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매고 있다. 조 부장판사는 “3년 만에 입는 법복인데 몸에 잘 맞는 것 같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날 재판장으로 복귀한 뒤 첫 재판을 진행했다. [강정현 기자]
지난달 16일 대법원은 현직 고법원장 한 명과 일선 법원장 등 다섯 명을 고법 부장판사로 전보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 2004년 최병학 수원지법원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한 적이 있지만 고법원장은 사법부 사상 처음이다. 정년까지 법관으로 일할 수 있는 ‘평생법관제’와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추진하겠다는 양승태(64)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지금까지는 고법원장을 마친 다음엔 용퇴하던 게 관행이었다. 광주고법원장에서 서울고법 행정7부 재판장으로 자리를 옮긴 조용호(57·연수원 10기) 부장판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법원장서 사상 첫 현업 복귀 … 57세 조용호 부장판사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렸다. 법원장을 하다가 다시 재판부에 복귀하는 것이 조직이나 후배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법원 밖에서는 병원장이 진료 현장으로, 대학 총장이 강의실로 돌아오지 않나. ‘판사는 재판을 해야 판사’라고 되뇌며 재판부 행을 택했다.“



 -재판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는 것인가.



 “판사가 재판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법관으로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연륜과 경륜이 있는 원숙한 법관이 재판을 담당하는 것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법조계 경력자를 판사로 임용하자는 법조 일원화 여론도 ‘새파랗게 젊은 판사들이 재판하는 것을 못 믿겠다’는 것 아닌가. 요즘 판사들은 중도 퇴직하고 변호사를 하기보다 법원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한다. 시작이 어렵지, 다른 판사들도 내심 누군가가 물꼬를 터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3년여 만에 재판장으로 복귀했다. 낯설지 않나.



 “사람은 자신이 맡은 직책에 따라 시각과 시야가 달라진다. 같은 판사라고 해도 젊은 배석판사와 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의 보는 눈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법원장이라는 행정직에 있다가 고법 부장을 다시 하니 법원 전체 흐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법원장으로서 판사들에게 했던 잔소리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내가 했던 말들을 명심하며 재판을 해야겠지.”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주로 했었나.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판결이 선고되면 판사가 심판을 받는다’는 서양 법언(法諺)이 있다. 일단 판결이 선고되고 나면 당사자와 국민 여론의 비판이 있고, 상급심의 심사가 있고, 학자의 학술적인 비평이 따른다. 역사 속에서도 법관의 판결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최근 들어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온다.



 “법관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고 재판을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다. ‘송사를 다룰 때 성의를 다해야 하고, 성의의 근본은 홀로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는 데 있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경구(警句)로 삼고 있다.”



채윤경 기자





◆조용호 판사는=사법부 사상 처음으로 고법원장에서 일선 재판장으로 복귀했다. 현재는 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행정7부 부장판사다. 법관 재직 기간(30년) 동안 주로 행정사건과 특허사건을 담당했다. 3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재판실무와 이론 모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중앙고와 건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춘천지법원장, 서울남부지법원장, 광주고법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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