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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의 월드 뷰]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년의 교훈

중앙일보 2012.03.09 00:33 종합 32면 지면보기
후나바시
본사 객원칼럼니스트
전 아사히신문 주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부터 1년을 맞이한다. 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싱크탱크 ‘일본재건 이니셔티브’는 이 사고 피해의 원인과 배경을 검증해 거기에서 교훈을 끌어내기 위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조사검증위원회’(위원장 기타자와 고이치 전 과학기술진흥기구 이사장)를 지난해 9월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 반 년 동안 조사를 실시해 그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여러 다양한 교훈과 제언도 내놓았다. 그중 향후 일본 원자력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게 핵연료 폐기물의 취급이다. 보다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일본이 추구하는 핵연료 사이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가장 우려됐던 건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 풀(pool·저장수조)의 붕괴와 (녹은) 핵연료의 멜트 스루(melt-through·원자로 관통)였다.



 이 위기 속에서 간 나오토(菅直人)총리는 곤도 슌스케(近藤駿介)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에게 은밀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도록 했다. 곤도 위원장은 ‘후쿠시마 제1원전 불의의 사태 시나리오 소묘(素描)’라고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총리에게 제출했다. 모두 극비 작전이었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4호기 풀에서 연료 파괴 및 코어 콘크리트(core concrete) 상호작용이 발생해 방사성 물질의 방출이 시작된 경우 50㎞ 권역 내의 주민 대피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1~3호기 풀에서도 연료 파괴에 이어 코어 콘크리트 상호작용이 발생해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기 시작하면 최대 250㎞ 권역 내의 주민들이 대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결국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경우 도쿄 등 수도권 3000만 명의 피난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뜻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복수의 원자로가 나란히 있기 때문에 연쇄 사고를 일으킬 ‘병행연쇄 원재(原災)’의 위험이 있었다. 또 수소폭발에 의해 건물 외벽도 없어지고 노출돼 있어 풀에 물이 없어질 경우의 ‘(아마도 원자로 이상의) 핵연료 풀 리스크’도 있었다.



 이번 병행연쇄 원재 중 4호기의 연료 풀이 가장 취약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六ヶ所村)에 있는 핵연료 재처리공장이 본격적으로 조업이 이뤄지지 않은 채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관계로 현재 일본 내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는 건물 내 풀 안에 계속 저장돼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매우 큰 리스크임이 이번에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일본의 핵연료 사이클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점을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핵 테러의 위험성을 사회에 알림과 동시에 그에 대한 대비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이전부터 “일본의 원전 시큐리티(안보) 의식이 희박하다”는 우려를 몇 차례나 제기해 왔다. 2002년 2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B5b대책으로 공격을 받았을 경우 ‘피해 극소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B5b대책이란 테러 공격으로 폭발이나 화재가 일어날 경우 원자로 및 사용후 핵연료 풀의 냉각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다. NRC는 일본의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대해 B5b대책을 통지하면서 “핵테러 대책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NRC 간부에 따르면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일본에 테러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전 테러에 대해 가장 취약한 곳은 다름아닌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으로 여겨진다. 안전과 시큐리티의 양 측면에서 일본 원전의 취약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은 앞으로 피폭국가로서의 ‘노 모어 히로시마(No more Hiroshima)’, 즉 핵폐기를 위한 기존의 노력 이상을 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국으로서 전 세계 원전의 안전과 핵안보, 나아가 불확산의 보증 조치(세이프가드)란 측면에서 더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특히 사용후 핵연료 문제 해결책을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내야만 한다. 롯카쇼무라 재처리 프로젝트를 이제까지와 같은 ‘국책민영(國策民營)’적 방식으로, 그것도 일본 단독으로 하는 것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의 비판도 강해질 것이 확실하다.



 현실적 한계로 인해 일본이 ‘탈 원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건 힘들다. 원전 의존도를 서서히 줄이면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가능한 한 확대해 나가는 ‘에너지 믹스’로 전환 전략을 추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사용후 핵연료 폐기물 등의 ‘백 엔드(back-end·종말 과정)’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게 선결 과제다.



 일본의 원전은 입지나 재가동과 같은 ‘프런트 엔드(front-end·초기 과정)’에서의 정치적 곤란함, 대립보다는 오히려 사용후 연료 핵 폐기물 처리 실패라고 하는 ‘백 엔드’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철저하게 검증한 다음에는 롯카쇼무라 재처리시설의 비용과 경영, 지배구조와 역할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 토대 위에 롯카쇼무라 재처리시설을 국제적 ‘백 엔드’ 대처의 시설로 삼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기술, 인재, 저장공간, 국제적 네트워크 등 폭넓은 옵션을 갖고 있는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 경우 일본과 동맹국인 미국의 정책 공조는 필수적이다.



 북한 핵을 앞으로 ‘무균(無菌)화’함에 있어 플루토늄을 이곳에서 떠맡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이 붕괴돼 이를 한국이 흡수합병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통일된 한반도와 일본이 공동 운영하는 가능성을 한국, 나아가 미국과 함께 탐구해 보는 게 좋겠다.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 일본의 3S(safety, security, safeguard)를 위한 다이내믹 원자력 외교가 요구되고 있다.



후나바시 본사 객원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주필

정리=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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