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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양성평등 완성한 런던올림픽

중앙일보 2012.03.09 00:31 종합 33면 지면보기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중요한 날이다. 런던올림픽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그 의미는 더 커졌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여성 권투선수들이 런던에 모여 경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 권투선수들이 올림픽 메달을 위해 승부를 겨루는 첫 번째 대회다. 여성 권투선수들은 스포츠 양성평등을 이뤄내기 위한 기나긴 고군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함께 일궜다.



 런던올림픽에서부터 권투에 여성이 출전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대 올림픽 116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모든 종목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출전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획기적인 역사가 런던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의미 있다. 런던은 1908년과 1948년 두 번의 올림픽을 성대히 치러냄으로써 자랑스러운 올림픽 유산(Olympic Heritage)을 남긴 곳이다.



 그러나 이런 성취에 도취돼 안주하면 안 된다. 아직도 너무나 많은 여성이 스포츠의 즐거움과 혜택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다른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IOC 역시 과거엔 양성평등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IOC는 몇몇 중요한 조치를 선진적으로 취해 왔다고 자부한다.



 양성평등이란 개념이 생소했을 때부터 IOC는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여성이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이다. 산업화를 이룬 어떤 국가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얻기 훨씬 전이다. 여성 선수 출전은 올림픽운동(Olympic Movement)에 있어서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당시만 하더라도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스포츠 경기 출전은 강한 사회적 거부감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들이 더 이상 그러한 저항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IOC의 오랜 목표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 양성평등은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에도 명시됐다. 1900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여성 선수들은 전체 출전 선수의 2.2%에 불과했다. 그러나 88년 서울올림픽에선 26.1%로 껑충 뛰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42%까지 늘어났다.



 올해 런던에선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름올림픽뿐 아니라 겨울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양성평등 성과를 내고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 여성 스키점프 종목 등이 추가됐음을 발표하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IOC는 앞으로도 각 국가올림픽위원회에 여성 선수를 더 많이 출전시키라고 촉구할 계획이다. 사실 15년 전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만 해도 26개 국가의 올림픽위원회가 여성 선수들을 대표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선 그 숫자가 단 3개 국가로 줄었다.



 올림픽에 더 많은 여성 선수가 출전하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여성 올림픽 선수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4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런던올림픽을 신문·텔레비전·인터넷을 통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절반은 여성이다. 올림픽이기에 성취 가능한 양성평등이다. 이런 국제적 접근은 올림픽을 양성평등을 위한 강력한 엔진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스포츠가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인간 소통의 모든 면에서 양성평등을 실현시킬 힘이 우리에겐 없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여성들은 사회의 고정관념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더 많은 기회를 성취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런던의 여성 권투선수들이 길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정리=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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