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장 엄숙한 루브르 박물관 …가장 발랄한 만화와 만나다

중앙일보 2012.03.09 00:18 종합 26면 지면보기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박물관만한 콘텐트가 또 있을까. 일본 만화가 아라키 히로히코는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만화를 그리면서 건물뿐 아니라 이곳의 방대한 소장품에서도 모티브를 얻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앞에 선 주인공의 과장된 포즈는 이 박물관 소장품인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15∼16세기, 사진 아래·부분)에서 따왔다. 고전과 현대예술의 행복한 만남이다. [열화당]


#1.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작품 ‘모나리자(La Joconde)’.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원래 이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얼핏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표정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루브르는 그간 ‘모나리자’를 한 점씩 번갈아 전시했다. 은총·관용·향수·즐거움…. 모든 사람이 같은 웃음을 본 게 아니어서 해석이 분분해졌고 신비감은 증폭됐다.

그래픽 노블 ‘루브르 만화총서’ … 국내서도 번역본 출간



#2. 루브르 박물관의 폐쇄된 지하실엔 ‘월하(月下)’라는 제목의 일본화(日本畵)가 있다. ‘모나리자’와는 정반대의 그림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검고 가장 사악한 그림이다. 이 ‘귀신 붙은 그림’을 찾아 지하실에 내려간 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저주가 닥친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15∼16세기)
 정말일까? 아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발랄한 상상의 최전선에 있는, 만화가들의 작품이다.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인 루브르가 만화로 새로 태어났다. 박물관 측은 만화가들에게 이 박물관을 주제로 그려줄 것을 의뢰했다.



가장 고전적인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박물관이 가장 대중적인 예술매체라 할 수 있는 만화와 손잡은 일종의 이종교배(異種交配)다. 일반인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미술관의 의지가 읽힌다.



선정된 만화가들은 소장품뿐 아니라 방대한 수장고(收藏庫), 후미진 지하실 등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박물관 구석구석을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맘껏 돌아보고, 여기서 얻은 영감을 만화책에 옮겼다.



 박물관 만화라고 해서 ‘서양 명화 읽기’ ‘어린이 서양미술사 입문’ 류의 교육만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천재들의 유산을 오랜 세월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곳,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경이의 집합체, 바로 이 박물관이란 곳이 주는 설렘이 만화가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미국·유럽 등에서 인기 있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가 있는 만화)의 하나다.



 ‘루브르 만화총서’는 프랑스의 만화 전문 출판사 퓌튀로폴리스가 루브르와 공동 기획했다. 그 결과 먼 미래의 탐사대가 빙하에 파묻힌 루브르의 명작을 발굴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의 『빙하시대』(니콜라 드 크레시, 2005년 10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여섯 권이 출간됐다. 국내에선 열화당이 한국어판을 출간 중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미 소설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에서 ‘모나리자’의 수수께끼에서 비롯한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그려졌다. 박물관은 이 소설이 2006년 영화화(감독 론 하워드)될 때 내부 촬영을 허가하는 등 협조했다.



 루브르가 만화에 눈을 돌린 까닭은 무엇일까.



앙리 로이레트 관장은 “박물관과 만화를 연결한다는 것은 언뜻 봐서는 엉뚱해 보이는 시도일 터다. 그러나 둘은 미적 창조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우리 기획의 야심은 이 두 세계 사이에 견고한 가교를 만들어 만화 독자들에게는 루브르의 전시작에 관심 갖게 하고, 관람객에겐 생동하는 우리 시대 창작에서 비롯된 새로운 표현의 예술 작품을 발견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모나리자’에 대한 깜찍한 상상을 풀어 놓은 만화는 『어느 박물관의 지하』(마르크-앙투안 마티외)다. 박물관이란,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시간에 정면 도전하는 곳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주받은 그림’에 대한 미스터리는 일본 만화가 아라키 히로히코의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다. 아라키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에 참여한 유일한 프랑스 밖 만화가다. 이 다섯번째 한국어판이 이번 주 출간된다.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중 하나. 1793년 프랑스 루브르궁전에 들어섰다.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오리엔트 및 유럽 미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등록된 작품만 해도 20만 점이 넘는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