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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책 조급증이 문제야

중앙일보 2012.03.09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여주 강천보에 간 적이 있다. 황포돛배를 형상화한 은하교가 멋졌다. 정부가 왜 그렇게 4대 강 사업을 하고 싶어했는지, 또 야당은 왜 기를 쓰고 결사 반대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찬성·반대 주장의 숱한 논거를 떠나서 하는 얘기다. 시쳇말로 ‘그림’이 좋았다. 도심 속 관광상품이 된 청계천이나, 빨간 아스팔트 위를 시원스레 달리는 파란 서울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림이 되면 정책효과를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해 가을 4대 강 보를 조기 개방한 것도 그래서일 거다. 이제까지 152만 명이 다녀갔다.



 그래도 4대 강 논란은 여전하다. 야당은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정치 논란을 최소화할 순 없었을까. 돌관공사(突貫工事)하듯이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드는 대신, 지역이 가장 원했던 영산강부터 순차적으로 4대 강 사업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산강 사업 결과를 차분히 지켜본 뒤 다른 수계로 사업을 확장했다면 지금 같은 혼란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외려 한강·낙동강·금강 수계에서 “왜 우리만 빼놓느냐”고 아우성을 치는 ‘인기 사업’이 됐을 수도 있다. 물론 정부는 재해예방이 시급했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쪼개서 하는 것보다 집중적으로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4대 강 논쟁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도 할 만했다.



 ‘곳간지기’ 기획재정부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 4대 강 법원 판결문을 뜯어보면 재정부를 꼬집는 내용이 적지 않다. 서울고법 등 다른 고법과 달리 이번 사건을 국가재정법 위반으로 본 부산고법은 4대 강 일부 사업에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제외한 것을 문제 삼았다. 국가재정법의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거다. 또 보의 설치, 준설 등의 사업이 예타를 면제할 정도로 시급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22조2000억원의 대규모 재정사업을 하면서 길어야 6개월이면 끝낼 수 있는 예타를 왜 못하느냐는 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재정부는 2009년 초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4대 강 사업과 관련해 예타 면제 사업으로 추가된 ‘재해예방’에 대한 언급을 보도자료에서 은근슬쩍 빼놓기도 했다.



 어린이집 대기자를 양산한 무상보육 확대도 마찬가지다. 여성 인력의 활용, 일을 통한 복지라는 대의에는 맞지만 너무 성급했다. 어차피 정치권 요구에 밀려서 하느니, 선제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무상보육 문제 하나는 해결한 MB정권’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4대 강도 무상보육도 임기 내에 끝내고 싶었던 정책 조급증이 문제였다.



 연초에 대통령은 올해를 ‘하산길’이 아닌 400m 계주에 비유했다. 계주에서 바통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때 더 속력을 내듯이 마지막 해 더 열심히 뛰자는 취지였다. 좋은 말씀이다. 다만 너무 조급해하다 바통 떨어뜨리는 불상사는 제발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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